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15:21 (금)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행복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행복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5.03.21 11:0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프리카 진료봉사.WHO 인턴십 마친 송정국씨

  한국 나이 33세.평균적인 의사들의 사회 나이에 비하면 아직은 파란 하늘 처럼 청청한 나이.그러나 구비 구비 지나온 삶의 행적에 비하면 결코 그 삶의 기록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98년 경희의대 졸업.성모병원에서 인턴 수료.그리고 1년여 청량리정신병원에서 여자 행려환자를 돌보는 의사생활을 하다 홀연히 국제 머시쉽에 자원, 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전쟁의 상흔을 치유했다.그러다 다시 2002년~2003년 런던 정경대학원 및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 및 재무 석사학위을 따내고, 다시금 WHO 인턴쉽에 도전했다.남다른 삶의 궤적이 느껴지는 이 주인공의 이름은 송정국씨.3개월간의 WHO 인턴쉽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를 만나봤다.

- 의사면허를 따면 대부분이 임상의사의 트랙을 걷게 된다. 특별하게 그 트랙에서 벗어난 동기라도.

30, 40대 선배들의 생활이 눈에 보였고, 정해진 삶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학창시절 때  평생을 WHO에서 일한 백영한 학장님의 '의학사' 강의를 재미있게 수강했다.오지인 파퓨아뉴기니에서 경험한 말라리아 환자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었고, 현재 WHO 사무총장인 이종욱 박사가 당시 남태평양에 계셨는데 이 분들의 삶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래서 이다음에 그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그래서 대학시절에도 영어, 기생충학에 열심이었다.어릴 때 부터의 생각도 작용한 것 같다.의사가 되면 의사가 없는 나라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 청량리정신병원에서 1년간 인턴생활을 하다 국제 머쉬십에 자원하게 되는데 그 동기는 무엇이었나.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정말 좋았고 이때(청량리정신병원)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것을 살펴보자는 맘이 생겼고, 때마침 한국누가회에서 아프리카에서 일할 의사를 찾고 있어서 자원하게 됐다.한편으론 만원 버스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내릴 때의 미련 같은 것도 솔직히 있었다.다음 버스가 언제 올지 기약할 수도 없고….그러나 아프리카에서 환자를 보겠다는 욕심이 컸다.

머쉬쉽(Mercy Ships International)은 비영리 기독교 선교단체로서 4척의 선박으로 전 세계 70개 이상의 항구에서 사역하면서 후원받은 재정의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 시에라리온은 어떤 곳인가? 이곳에서는 또 어떤 일을 했나?

10년간 내전을 끝낸 곳으로 정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었다.전후 의료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수도 프리타운을 중심으로 40Km 반경 16개 커뮤니티의 5천여명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펼쳤다.

이곳에서는 한마디로 많이 배웠다.내 인생에서 방향 전환될 만한 결정적 경험이었다.현재 우리가 이야기 하는 의료시스템, 국제협력, 비용효과, 의료서비스의 표준화 등의 문제를 모두 현실로 부닥쳤다.시에라리온 의사 6명과 함께 내가 메디칼 코디네이터로서 마을을 방문해  어린이, 산모 환자들을 주로 돌봤다.또 입원이 필요한 경우는 입원시키고, 병원에서 그 환자를 돌봤다.콜레라 등 전염병이 퍼지면 다른 NGO 그룹과 정부 관료들과 협력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전염병을 방역하는 일도 맡았다.그곳에서는 '정말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하는 느낌을 가졌고, 그래서 행복했다.그러나 그곳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다.

송씨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단언한다.아프리카에 모이는 선진외국의 의사들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다'는 소명의식으로 휴머니즘을 실천하러 온다.하지만 수혜를 받는 입장으로 돌아오면 베푼다는 행위의 어려움도 절실히 깨달았단다.많이 가진 나라의 베푸는 자들이 간혹 원주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또다른 제국주의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아프리카에서 또다시 런던으로 건너가 공부하게 되는데.

막상 아프리카에 가보니 경제, 정치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시에라리온은 10년간의 내전으로 '전무'의 상태였다.얼마 되지 않는 가진 돈을 어디에 먼저 써야 할 지, 적재적소에 써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런던대 보건대학원이 사실 들어가기 힘든 곳인데 단체장의 추천서를 통해 운좋게 입학허가를 따냈다.배우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런던대 보건대학원 재학 시절 WHO 관계자의 통상강의를 듣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WHO 인턴쉽에 지원하게 됐다.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라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됐다.

- 한국에 다시 나오니 어떤가?

아프리카, 런던에 있을 때는 모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그런데 한국에 나와보니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어렵다.WHO에 일자리가 없어 한국에 나왔는데 이곳 사정도 마찬가지다.다시 임상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중이다.

일사천리로 국제머시쉽에서 런던에서의 수학, WHO 인턴쉽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송씨의 삶이 거침없이 느껴졌다.그러나 런던에서의 학비를 벌기 위해 경북 봉화의 오지 병원에서 야간당직을 선 이야기며, 여름방학 때에는 한국에 나와 학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에서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뚜렷한 의지와 근면함이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성취되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경북 봉화에서의 의사생활은 그녀가 촌부들의 삶을 이해하고, 의료소외지, 접근성, 형평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 WHO에서 대외 통상과 국제보건 일을 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WTO DDA  의료시장 개방이 의료계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됐다. 정부 및 의료계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분야가 다른 상품에 비해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느냐를 고려해야 한다.가난한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의료인력을 밖으로 내보내 자국으로 송금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민간부문에서 의협을 중심으로 한의사협회·병원협회·간호협회·치과의사협회 등이 WTO DDA 공동대책위원회를 가동한 것으로 전해들었다.뭉치면 힘이 된다.탁월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송씨는 WHO 인턴쉽에 자원할 때 의협으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이 일을 계기로 독일보건의료개혁법, GATS in Health Service Mode 3(상업적 주재와 FDI), GATS in Health Service Mode 2(해외소비), trade in health Service 등의 보고서를 의협에 보내오기도 했다.또 3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본인의 표현 그대로 '기적같이' <Trade in Health Services, Country Profile:South Korea> 논문을 작성했다.논문을 끝낸데는 7할이 OECD, 복지부, 통상관련자들 등 주위 분들의 도움이었단다.

국제 무대에 뛴 빵빵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현재 그녀는 백수 신세다. 하지만 그녀는 명랑하다.준비하고 있으면 적당한 때 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그녀의 생각.다만 배운 것을 잘 써먹으면 하는 바람을 담담히 전할 뿐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