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라는 생각을 먼저했으면..."
"그냥 '우리'라는 생각을 먼저했으면..."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5.03.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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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극복상 수상' 김세현 광주 북구보건소장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하는 사회,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무겁다.
  다름 혹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소신껏 환자진료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최근에는 한 지역의 주민들 건강까지 책임지고 있으니 그는 바로 광주시 북구보건소에서 23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세현 소장이다.

■ 보건소장이 되기까지...  

김세현 소장은 지난 2003년 3월 전국 최초로 장애인(선천성 뇌성마비 3급)이면서 의사의 신분으로 보건소장에 임명되면서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다.게다가 올해에는 '올해의 장애 극복상'을 수상하면서 소위 말하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사가 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그런 모습은 겸손하기 까지 하다.

김 소장은 80년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81년 광주 동구보건소에서 한 때 일용직 의사로 근무를 했다.그러다가 82년 북구보건소에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진로를 찾는 동안 잠시동안만 보건소에서 근무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나만 바라보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멀리할 수 없어 지금까지 보건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그는 요즘 20여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환자들의 인생상담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게다가 60여명에 이르는 보건소 식구들까지 챙기느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 장애라는 이유로 인턴수련 못받아

김 소장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의대도 9년 동안 다녀야 했다.온갖 고통을 이겨가면서 졸업을 했으나 그는 곧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슬픔과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졸업을 하고 인턴교육을 병원에 신청했으나 장애를 갖고 있는 그를 받아주는 곳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선배들 또한 딱한 사정에 있는 후배를 도와주지 않았다.그 당시 좋은 의사로서 살아가겠다던 부픈 꿈은 산산히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장애인 이라는 이유때문은 아니겠지만 의사로서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에 인턴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아픔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김 소장의 얼굴 빛에서 느낄 수 있다.

그나마 그를 위로해주었던 것은 학교 동아리 '가톨릭학생회'다.지금도 이들과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친목도모를 하고 있다.

■ 일용직 의사로 보건소와 인연맺어

학교 및 동료의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던 김 소장은 졸업 이후 한 동안 방황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의사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건소에서 근무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것도 일용직 의사로 말이다.

그 당시만해도 보건소는 의사사회 내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곳이었다.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가지 않는 곳이 바로 보건소였던 것이다.

기껏해야 가정 형편 때문에 공중보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보건소에서 의무적으로 근무를 한 경우는 있지만 의사 스스로 보건소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

80년대 초만해도 의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들었다고 말하는 김 소장은 다행히 북구보건소장이 의사출신이어서 조금은 위안이 됐다고 한다.그러나 오래지 않아 소장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혼자서 환자들을 진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보건소와의 지속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고 23년 동안 북구보건소에서 근무를 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 지방일수록 보건소 인력 부족

현재 북구보건소에는 60여명의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그리고 김 소장을 제외하고 일반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한의사 1명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며, 이들은 하루 평균 130여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이러한 조건은 김 소장이 80년대 근무할 때와는 너무나 상황이 다르다.그동안 시설과 인력면에서 많은 지원과 조직 확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소장은 "잘 알다시피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매우 크다"며 시설·운영면에서 국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행정업무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아무리 좋은 의료진이 보건소에 근무를 한다고 해도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건사업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광주시에서 북구가 민원업무가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야 60여명의 인력이 배치되는 등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하고 있다. 보건소장에 있는 동안 이러한 문제부터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 당분간 그의 목표이다.

■ 환자 고민 들어주는 것도 '진료'

환자들 때문에 보건소를 떠나지 못했다는 김 소장은 젊은 환자들보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 인기가 많다.

김 소장은 "처음 계약직으로 북구보건소를 왔는데, 그 당시 의사가 없어 혼자 하루 평균 2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 환자들이 보건소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구나라는 소문을 내고 더 많은 환자들이 보건소를 방문하다보니 이렇게 발목이 잡히게 됐다"며, 지금은 이들 환자들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행복한 고민을 했다.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 환자들이 진료와는 상관없이 소장실을 찾는데, 1급 비밀만 빼고는 개인의 고민이라거나 일상적인 일들 모두를 말한단다.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소장은 "이러한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진료의 한 부분"이라며 즐겁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정작 자신의 아픈 추억은 치유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김 소장은 "노인분들이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막힌 가슴을 뻥 뚫고 행복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모습만 봐도 좋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탓일까? 목포에서 태어나 4살되던 해에 여수로 이사를 했다.그리고 초등학교 때에는 순천으로 이사를 갔다가 초등하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이곳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됐다.실제 태어난 곳은 목포이지만 성인이 되면서 사회와의 관계를 맺은 곳은 광주인 셈이다.

어느덧 슬하에 두 아들을 둘 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큰 아이는 대학생이고, 작은 아이는 '고3 수험생'이다."큰 아들은 적정이 없지만 작은 아들이 고3이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애환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김 소장은 "이렇게 아이들이 잘 크고, 23년 동안 보건소에서 열심히 근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역할이 컸다"며, 힘들었던 모든 일을 잘 감내해준 아내의 공을 잊지 않았다.

사소한 것으로도 자주 다툰 다는 그는 "서로의 입장만을 얘기하다보니 다툼이 많았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무조건(?) 양보하면서 살겠다고...

■ '너'와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자

"너와 나라는 구분을 먼저 하기보다 우리라는 생각을 먼저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 소장은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편가르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정치권도 그렇고, 일상 생활속에서의 사람들이 모두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또한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지 말고 그냥 우리라는 생각을 해야만 '왕따'문화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김 소장은 사회의 편견된 시각도 잘못되었지만 장애인 스스로도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을 갖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일반인들도 선천성 장애보다는 후천성 장애에 걸릴 가능성이 많으므로 사회적 차별이 없도록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다가오는 17일 보건소 전 직원이 야유회를 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는 그에게서 장애인이기에 특별하다는 느낌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를 장애인이라고 먼저 생각하고 접근하려고 했던 사회.그리고 사회적 편견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들이 마음의 장애를 먼저 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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