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까지 따봐? 그러나..."
"전문의까지 따봐? 그러나..."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5.03.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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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본과 1년 편입한 이경권 변호사

그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 좋다고 했다. 등장인물과 사건전개가 매우 설득력있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란다. 만화책보다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내가 말하자 곧바로 '마스터 키튼'에 대한 얘기가 '에반겔리온'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튀어 나왔다. 난 굉장히 좋았는데 그는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호'식의 애니메이션이 더 좋았단다.

■ 유급하지 않는 것이 최대 목표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한맥·가톨릭의대 4년)와 나는 1970년, 1971년 이렇게 1년 차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태어났다. 70년생.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보기에 60년대 후반생들이나 70년대 초반생들이나 철없기는 하늘을 찌르고 정치사회적으로는 한통속인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69년생과 70년생 사이에는 365일 이상의 그 어떤 차이가 존재한다. 누구는 앞대가리가 6에서 7로 바꿨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386세대와 70년 초반생들의 정체성에는 정말 묘한 틈새가 있다.

우리 시대에는 치약을 파는 회사가 2개였다. 우리 위 세대들은 그저 이 닦는데 쓸 '럭키치약' 하나면 됐지만 우리는 민트향 강한 럭키치약말고도 때때로 기분 전환을 위한 딸기향 치약도 필요했다. 그리고 바로 브랜드 소비시대가 물 밀듯이 치고 들어왔다. 우린 '나이키'를 사주지 않으면 '프로 스펙스'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부모님께 항변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다. 어떻게 보면 6·25에 보리고개까지 넘나든 부모님들에 비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특별한 셈없이 불쑥불쑥 뛰어 드는 사람들을 보면 필시 70년대 초반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내 선입견이다.

난 이 변호사가 70년생이라며 그리고 일본만화광이라고 말하자마자 "왜 변호사이면서 의대갈 생각을 했느냐", "사서 고생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안하기로 했다. 그는 아마 특별한 셈없이 하고 싶어 했을 것이란 나의 선입견이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얼마나 자주 이런 질문을 들었을까, 또 그런 질문을 남들한테 듣기 전에 얼마나 많이 그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봤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그를 더이상 지겹게 만들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그대신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는 힘들다고, 특히 문과생이었던 자기에게는 생화학과 같은 이학분야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늦깍기 의대생인 자신의 최대 목표는 유급하지 않고 졸업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젊고 팔팔한 20대 초반의 의대생들을 따라 가기에 자신은 너무 늙었다는 농담과 함께.

■ "기왕 할거면…" 오기는 나의 힘

지금 생각해 보면 의대에 가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오기'때문이었단다. 사법시험은 대학입시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붙었다. 26살에 공부 시작해 그 다음 다음해에 1차에 붙고 그 이듬해 2차에도 바로 붙었으니깐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법률법인에 들어가 의료소송을 맡으면서 최고 전문직 중에 하나인 변호사가 적어도 의료소송에 있어서는 하나도 전문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오기가 생겼고 기왕 할거면 정말 의사가 돼서 완전한 의료소송 전문변호사가 돼보자는 생각까지 미치게 됐단다.

처음에는 집사람도 적극 밀어줘서 어깨가 가벼웠는데 요즘은 하루빨리 의대를 마쳐야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차 있다고 말했다. 이제 9개월 된 동경이 아빠로서, 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의대생으로서 1인 4역을 하다보니 동경이에게, 집사람에게, 회사에 미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란다. 모두 잘 참고 지켜봐 주고 있어 고맙고 특히 동경이가 아빠를 잘이해하는 것 같아 고맙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난 충분히 공감했다. 특히 의대생 생활이 그냥 평범한 대학생활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역시 내 말에 적극 공감한단다. 밖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안에 들어와 보니 의대생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더란다. 매주 보는 정기적인 시험에다 부정기적으로 보는 무슨 무슨시험, 이런 저런 시험, 각종 시험의 연속으로 자기는 몰론 한창 어린 나이에 있는 의대생들이 녹다운 직전 어딘가에 다 머물러 있단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시간이 나도 잠자기 바쁘고 빨리 취하기 위해 격렬한 술자리가 있을 뿐.

그는 밖에 있을 때 의사들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타이트한 교과과정과 수련과정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조차 갖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활에 망신창이가 되고 있는 어린학생들이 슬그머니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20대 초반은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사회경험을 통해 평생 살아갈 사회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잡아 가야 하는 시점인데 의대 교육은 이론과 실무에 치우쳐 있어 인문적인 소양을 쌓기 위한 기회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연세의대 등 많은 의대들에서 추진 중인 의대 교과 과정에 인문학적 요소를 첨가하는 것에 적극 찬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패던 성공이던 다양한 경험들이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일반인의 통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한단다.

자신이 그 대표적인 경우란다. 중·고등학교 시절 늘 최고였던 그가 서울대를 내리 3번 떨어지자 차차 부모님 볼 면목이 없어지고 그 넘쳐나던 자신감이 어디로 다 숨어 버리더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시기였는데 그래도 3수 생활을 하며 '겸손'이라는 미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의료소송 전문변호사로 돌아 갈 것…"

그는 의대를 마치면 다시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의 자리로 돌아갈 계획이다. 전문의 코스도 밟고 싶지만 4년간 많은 희생을 감내한 가족들에게 더 이상의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단다. 그러나 결코 길지않은 30여 평생을 살아오며 인생에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다는 진리를 알게 됐고 그래서 의협 회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두고 싶단다. 얼마하지 않은 의대 공부지만 그 속에서 의학의 매력이 속속 느껴질 때 특히 그렇단다.

이경권 변호사와의 2시간 반이 넘는 인터뷰는 정기회의가 곧 열릴 것이라는 비서의 2번에 걸친 재촉 전화가 울리고서야 끝이 났다. 난 그가 의료전문변호사가 되던 의사가 되던 이쪽 필드에서 꾸준히 마주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통해 4년 후 그는 틀림없이 좋은 의사 또는 변호사로 성장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남은 그의 의대생활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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