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기에 성공한 군수될 수 있었다"
"의사이기에 성공한 군수될 수 있었다"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5.03.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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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이강수 군수

  "의사이기 때문에 성공한 군수가 될 수 있었다."
  이강수 전라북도 고창군수를 두고 주변에서 하는 말이다. 이 군수는 지난 2002년 제3기 민선 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그저 성공한 의사 중 한명이었다.
  굳이 좀 특이한 이력을 들자면 성공한 병원장에서 머물지 않고 경영난으로 쓰러져 가던 학교법인 '중앙학원'을 인수하고 동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 교수로 재직했다는 정도. 그런 이 군수가 2002년 사고를 하나 쳤다. 민선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해서 의사로서 처음으로 당선된 것이다.

■ 사회치유하는 의사되고파…  

그에게 의사의 길을 가다 자치단체장으로 인생의 항로를 틀게 된 동기를 물어봤다. 그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사회를 치유하고 싶은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어릴적 부모님을 여의고 고향을 떠났지만 부모님을 떠올리면 늘 고향인 고창에서의 어린시절이 기억나곤 했습니다. 광주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만 나면 고창에서 살다시피했죠.그러다보니 고향의 고단한 현실을 알게 됐고 그런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이 군수가 말하는 고창의 고단한 현실이란 대한민국의 모든 농촌이 그렇듯 나날이 쇠락하고 있는 피폐한 농촌의 현주소였다.

"고창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입니다. 인구의 80%가 농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죠. 하지만 근대화 이후 쇠락하는 농촌의 현실을 고창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젊은 층 인구가 계속 고향을 등지는 것이 큰 문제였죠. 아니 고향을 등지는 아들, 딸들을 부모가 잡을 수 없다는 현실이 더욱 큰 문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이 군수는 이런 고창의 현실을 바꿔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기존의 1차 산업에 바탕을 둔 농촌의 생산토대를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벽에 부딪쳤다.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1차산업의 한계로 꽉 막혀버린 고창의 현실을 미친듯이 바꿔보고 싶었다. 자칫 자포자기에 빠져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고향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경관농업'. 1차 산업이라 생각했던 농업을 3차 산업으로, 관광산업으로 만들자는 발상이다.

■ "농업을 관광산업으로 만들자"

이런 생각은 곧바로 고창의 '5월 청보리밭' 축제기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보리를 수확하는 과정을 관광산업으로 만들자는 이 군수의 생각에 냉소적인 주변의 반응만이 되돌아 왔다.

누가 농촌에서 흔하디 흔한 보리밭을 구경하러 고창까지 오겠느냐는 말이었다. 현실을 모른다느니, 의사라서 행정을 잘 모른다느니 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 군수의  생각은 달랐다.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생활로 지친 사람들이 고향의 보리밭을 떠올리며 몰려들 것 같았다. 결국 그의 생각대로 지난 해 3만여평의 군내 청보리밭에서 첫 '청보리밭 축제'를 개최했다. 결과는 대성공. 축제에서 보리로 만든 특산물을 팔아 벌어들인 수익금만 한해 보리수확으로 번 수익금과 맞먹었다. 거기에다 관광객들이 와서 풀고 간 돈까지 계산하면….

그러나 이 군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청보리밭 축제가 1차 산업인 농업을 관광산업인 3차 산업화한 것이라면 정부로부터 지역의 명물인 복분자술을 기반으로 하는 '복분자산업 특구'지정을 받아 각종 세제혜택과 함께 2차 산업의 생산기반마저 닦았다.

이 군수가 50이 훌쩍 넘는 나이에도 이런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늘 책을 손에 놓치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려는 마음자세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를 일찍 여윈 탓에 어린시절 경험한 고생이, 그리고 고달픈 전공의 수련생활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성공한 군수라는 주변의 평은 섣부르다고 말하지만 수련경험과 의사라는 직업이 군수직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동감했다.

"내과전공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받은 수련교육의 질은 그 어떤 곳에서 받은 교육보다 훌륭했으며 그런 양질의  교육은 지금도 군정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의사들도 사회활동 많이 했으면…

어느덧 자신처럼 가난했던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또 살기좋은 고향을 만들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의대교수, 병원장, 사회과학대 교수, 이제 군수라는 각양각색의 직업을 거치게 됐다는 이 군수. 하지만 젊은 시절 인생의 목표였으며 현재의 자신이 있게 해준 것은 의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시절의 꿈이 씨앗이 된 것이라고 믿고있다.

처음 군수가 됐을 때에도 직원들과 군민들의 건강상담을 직접 해주며 스스럼없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는 그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아직도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선거에서 상대방 후보로 부터 돈많은 의사가 이제 권력까지 쥐려한다는 비난을 받았을때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의사 동료들이 좀더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실질적인 활동을 활발히 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한다. "의사들이 보통 자신의 일 말고는 관심을 잘 쏟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주변의 작은 일부터, 관심있는 분야부터 참여하다 보면 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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