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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평범함'은 가라 '돈사마'가 있다
'평범함'은 가라 '돈사마'가 있다
  • 조명덕 기자 mdcho@kma.org
  • 승인 2005.03.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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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김상돈 레지던트

 

 

  ■ '독특'과 '품위' 균형 유지

"저요? 그냥 튀고 싶을 뿐 이죠. 남과는 다르고 싶고,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보고 싶고 그렇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한다고나 할까…"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의국에는 톡톡 튀는 전공의가 한 명 있다. 김상돈 레지던트. 스스로를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첫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4년차가 되는 그는 산부인과내 각종 행사나 회식때마다 진행(사회 또는 MC)을 도맡다시피 하는 '분위기 메이커' 또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서울대병원 3층 분만장 한 모퉁이 작은 방에서 만난 그는 현재 '욘사마' 열풍이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하는 지금,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 한창 '돈사마'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해 연말에도 어김없이 산부인과 송년회 사회를 맡게 된 그가 멋진 송년회를 준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미용실에서 소위 '바람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선보인 탤런트 배용준의 바로 그 헤어스타일이다. 일부에서는 '고이즈미 머리'라며, 그를 시샘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후로 '돈사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배용준 처럼 잘 생겨서 생긴 별명이 아니라, 단지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말이죠."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조금은 속보이는 겸손을 보이는 이 레지던트는,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는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사마'라는 접미사가 붙어도 무방할 만큼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사족이지만 이 톡톡 튀기만 할 것 같은 그는,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부회장이란 중책도 맡고 있다.

"의과대학 재학시절 부터 '유행에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의사집단이 워낙 보수적인데다가 특히 산부인과는 의사집단 중에서도 그 '보수성'이 평균 이상이기 때문에 스스로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기 쉽고, 반대로 외부로부터도 단절되기 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예나 패션을 비롯해 사회적인 이슈에도 예민해 지기 위해 애썼습니다."

결국 '돈사마'가 연예나 패션 등 '유행'에 민감한 것은 스스로 튀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폐쇄적이어서 따돌림 당하기 쉬운 의사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자기가 속한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다른 의사와 달리 연예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다 보니, 각종 행사나 회식자리에서 사회를 볼 때 적절히 코멘트할 수 있는 센스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다. 타고난 유머감각에 이같은 센스가 더해져 오늘날 그가 4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의국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의사사회, 그리고 전공의라는 업무의 특성상 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조직안에서 '독특'과 '품위'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터이다.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유머, 그리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특유의 조직문화에서 소통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적절한 지는 몰라도 적당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죠."

아무튼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된 이유가 궁금해 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의사가 될 생각이 없었어요. 클래식에 심취한 고등학생이었고,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클래식이 좋아 고 2때 갑자기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해서 음대에 진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장애아 교육시설에서 일주일간 자원봉사 체험을 하게 된 그는 이때 '음악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더욱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의사가 되기로 했다.

■ 관현악단 단원으로…밴드 싱어로

"음악 보다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고, 음악은 그저 즐기면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음대에 가지 못한 그는 서울의대 관현악단의 단원이 돼 맺힌 한(?)을 풀게 된다. 비올라를 '전공'으로, 플룻과 클라리넷을 '부전공'으로 삼아 그 좋아하는 음악을, 의대에서도 즐기게 된 것이다. 또 교회에서는 밴드를 조직해 싱어로 활동하며, 가스펠 앨범 제작에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파견근무를 했을 때도 그는  특별한 여가를 보냈다. 아무래도 본원에서 근무할 때 보다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그는 대뜸 일본어학원에 등록하고 일본어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레지던트가 시간이 남는다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경우는 너 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위에서수근댔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학에 특별한 재능은 없었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일본어를 익혔어요. 학원의 일본어 강사도 드물게 빨리 습득한 경우라고 평을 했지만, 생활에 필요한 일본어는 대충 구사할 정도가 됐죠."

산모보호자 중 일본사람이 있어 이때 배우고 익힌 일본어를 유감없이 써먹어 보기도 한 그는 '어학도 감각이고 순발력'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외국어 배우기에 고생한 사람들을 약오르게 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이쯤에서 그의 꿈을 물어봤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의사니까 사람의 육체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저 때문에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어떤 '자리'나 '모양'이 아니라 '가치'라고 생각돼요. 가령 제가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살다가, 정작 교수가 되면 꿈이 없어지는 것이겠죠."

분만장 모퉁이 좁은 방을 나와 회진 때문에 병실로 들어서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병실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환자로 부터 "수술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고는 환자에게 예후를 상세히 설명하며 안심시켰다. 영락없는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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