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울릉도,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5.03.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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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보건의료원장 정만진 회원

  정만진 경상북도의사회 부회장이 "울릉군, 보건의료원장 못 구해 발 동동"이란 신문기사를 본 것은 지난 1월. 명색이 의료계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울릉보건의료원은 중소 병원급 규모에다 의료원장은 공무원 신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몇 일 후, 의사회로 날아온 '좋은 의사 선생님을 울릉보건의료원장으로 추천해 달라'는 협조 공문은 정 부회장에게 '운명의 소리'처럼 들렸다. 곧바로 떠날 준비에 들어갔다. 아내 한테도, 자식들 한테도 말 안했다. '책임감과 운명'. 지난해 이라크로 홀연히 떠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 '울릉도 일주 걷기대회'에 참석.

-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나요?

경북에서 일어난 의료문제는 경북의사회에서 풀어야 하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이 꿈틀거렸습니다. 내가 가기 싫은 곳에 누구보고 가라고 하겠습니니까? 우리나라에는 개원의가 넘쳐나니까 저 하나 의원문 닫는다고 감기 배탈 환자가 큰 일 나는 것도 아니고.

- 그래도 20년 개원의 생활을 접고, 섬생활을 한다는게 쉬운 결심은 아닐텐데요.

제 나이가 50대 중반이거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무슨 새로운 모험을 한다던가,  그럴 나이는 아닌거죠. 그런데 저는 항상 우리나라 어딘가에, 세계 어딘가에 내가 꼭 필요한 곳이 없을까 하고 기웃거렸습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없나 하고.  작년 5월에 짧은 기간이나마 이라크에 의료봉사를 다녀온 것도, 그냥 내가 꼭 가야 할 것 같아서 갔다 온 거에요(※편집자주:정만진 부회장은 2003년 5월 23일부터 10일간 이라크 의료봉사단의 단장으로 활동했다).

이라크 갔다 온 후에는 아프리카 르완다를 많이 생각했어요. 제 친구가 거기에서 2년동안 의료봉사를 하고 왔거든요. 그런데 나이도 있고, 여러가지 복잡한 일도 있고 해서 망설였지요. 그러던 와중에 울릉도가 제 앞에 탁 나타난거죠.

-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가족들한테 일절 알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경북도청에서 면접 받으러 오라는 등기우편을 아내한테 들켰죠. 아내의 반응은 약간 황당하면서도 착잡한 것 같았어요. 변화란게 원래 두렵고 번거로운거잖아요. 가만히 있던 대로 살면 될텐데 왜 이런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입디다.

그런데 제가 워낙 평소부터 아프리카 타령을 해 온 데다가 작년에 이라크 건으로 한번 당한(?)게 있어서 그런지, 쉽게 이해하고 동감해 주더군요. 서울에 있는 두 딸한테는 모든것이 결정된 후에 알려줬습니다.사법 연수원생인 큰 딸은 사정 이야기를 듣고 전적인 동의를 표했고, 대학 4학년인 둘째는 '지금까지 처럼 부모님이 알아서 잘 하겠지'하는 태도였어요. 친구 친지들도 대부분 잘했다, 부럽다 그런 반응이었습니다. 하기야 나이 쉰여섯에 공무원이 되는게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 울릉도에 가신지 한달이 조금 넘었는데요, 적응은 많이 되셨나요?

아주 좋습니다. 공기 맑고 경치 좋고, 의료원 식구들, 주민들 모두 친절하고…. 요새는 주민들과 친해지려고 노력 많이 합니다. 얼마전에는 '울릉도 일주 걷기대회'에도 참여했지요. 주민 자치 행사에 빠짐없이 가보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많이 반겨줘서 참 고맙게 생각해요.

- 생활에 불편하신 점은?

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풍랑이 심해서 배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대구나 서울로 나가는 날이면 식사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지금은 아내한테 요리 교육을 받아 소고기 국도 끓일 줄 알고, 달걀프라이도 혼자 해 먹지요(웃음).  

- 의사회 업무는 어떻게 보십니까?

울릉도가 포항에서 뱃길로 3시간 걸리거든요. 상임이사회 참석하는데 큰 불편은 없습니다. 급한 사안일 경우는 전화나 이메일로 처리해도 되고…. 8월쯤에는 상임이사회를 울릉도에서 개최할 계획도 있습니다.

- 울릉보건의료원을 소개하면?

한개씩 있는 개원 치과와 한의원을 빼면 울릉도의 유일한 의료기관 입니다. 9개 진료과와 응급실이 있고 2개의 보건지소와 3개의 보건진료소가 있습니다. 의료진은 원장을 빼고 17명의 공중 보건의가 있는데, 이중에 9명이 전문의입니다. 간호과와 행정부 직원을 포함하면 전체 직원이 70여명이나 됩니다.

8월말에 지금 건물의 2배나 되는 넓은 곳으로 이사갑니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의 수술을 포함한 1차 진료를 담당하고, 치료하기 곤란한 CVA나 heart problem 환자는 포항이나 대구로 후송하고, 아주 급할 경우에는 헬기를 동원하기도 하지요. 시설과 의료진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울릉도의 유일한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의료진과 직원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등단 수필가로도 유명하신데요

유명까지야…(웃음). '수필과 비평'의 신인상 수상으로 수필가로 등단했고, 모 신문이 주최한 수필문학상에 입상한게 전부인데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 편만으로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마가렛 미첼을 흉내 내고 싶어 등단을 했습니다. 울릉도에서 그 꿈을 실현할 모티브를 찾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라크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최근 발생한 고 김선일씨 참사 사건에 대해 물어보니, '안타깝다'는 말을 여덟번이나 했다. 정 부회장은 정이 많고 낙천적이며, 호기심과 결단력, 책임감을 두루갖춘 인물로 정평나있다. 거기에다 수필가의 감수성까지 지녔으니, 그의 울릉도 생활, 한편의 TV 시트콤처럼 머리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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