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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이원화의 고착과정을 되돌아보며
시론 의료이원화의 고착과정을 되돌아보며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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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주(권오주의원·의원문제연구회장)

최근 의학과 한의학계의 갈등을 보면서 왜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날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현재 IT를 중심으로 공산물 규격 등 세계적 통일의 가속도는 한층 더 활발해 지고 있다. 20세기 이후 가장 먼저 세계적 동일성을 성취한 분야는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을 수학한 의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각 나라의 일정한 요식행위를 거친 후 공식적인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속의학이나 전통의학의 범주에 속하는 대상은 세계적인 공인을 거치지 않는 한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하기 어렵다.

그런데 유달리 우리나라에서만 갈등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는 의료법 제정당시부터 그러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가 수립됐으나 곧이어 발발한 6·25 한국전쟁으로 의료법을 정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의료법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료법(전문 10장 66조)은 1951년 9월 25일 피란지인 임시 수도 부산에서 처음 공포되었다. 이 법에 의료업자라는 호칭 하에 ①의사, 치과의사 ②한의사 ③보건원, 조산원, 간호원의 3종으로 구분해 규정했는데 이것이 이원적 의료체계의 효시다.

1970년대 닉슨 방중 당시 침술에 의한 마취 성공이라는 중의학의 신비성이 언론에 부각되면서 서방세계에서는 동양의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1980년대 홍콩의 중공백화점을 매개로 한의약품이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모으면서 '우황청심환', '편자환'등이 국내에 소개됐다. 이러한 연고로 우황청심환이 국산화 되었고, 각 가정집마다 비상약으로 비치할 정도로 성공했다. 1990년대 이후 한의학은 중국의 개방과 함께 국민 저변에 확장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에 있어서의 중서의학(中西醫學)은 우리나라와 같이 갈등관계가 아니고 의사나 의료기관의 특성에 따라 선택되고 있으며, 공존하고 있는 형태이다. 중국의 의료는 공존이지 이원화가 아니다. 의과대학이나 의사 자체도 면허의 이원화가 아니라 자기 전공이나 의료기관의 선호도에 따른 선택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의료이원화의 고착은 국가 보건정책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의사협회 차원에서도 이미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연속적이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의료이원화의 종식을 위해 애써 왔다. 70년대에는 '의료일원화'로, 80년대 이후에는 '의료협진'이라는 이름으로 노력해 왔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신토불이'의 정서에 힘입어 한의학의 국수화와 더불어 더욱 고착화되어 가는 듯한 분위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의사단체로서는 자기들 직업에 대한 권익신장 때문에 자기주장이 우선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본다면 행정당국이나 정치권에서 미래 지향적인 국가 보건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관내지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편파적인 정책을 지속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건강이지 의료제도가 아니다. 정책 입안자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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