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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미봉에 공권력까지…`분노'
미봉에 공권력까지…`분노'
  • 오윤수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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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정부는 잘못된 제도를 바로 잡는데 주력해야'

8월에도 의료계의 분노는 한여름 무더위 처럼 식을 줄 몰랐다.

지난 6월에 시작된 1차 휴·폐업 투쟁이 다소 진정 국면을 찾던 의료사태는 정부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결국 `2차 폐업'이라는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IMF 경제위기 이후 100조원이 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숫자인 거액(巨額)을 쏟아 붓고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 “`구조조정'을 구조조정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하물며 “추가부담이 없을 것”이라며 돈 한푼 쓰지 않은 정부가 의료개혁을 하겠다는 허울좋은 거짓은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한달도 안돼 곳곳에서 파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젠 체면 따위가 중요치 않다. 정부와 국민 그리고 의료계 모두 지쳐 있다. 이들을 위해 `국민을 위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중대한 결단을 내릴 때다.

―진료실에서 차분히 환자를 보살펴야 할 의사가 거리로 나선지 벌써 1년이 다 돼갑니다. 이로 인해 그나마 보잘것 없는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될 위기에 놓여 있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밥그릇 싸움'이라며 수수방관 한 채 매도하고 있습니다. 의료사태를 막기 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열어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 역시 말뿐이었습니다.

―약사의 불법진료를 방치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제한하는 개악(改惡)된 약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과 관련, 의료계는 “더 이상 자존심이 남아 있지 않다”며 1일 2차 폐업 투쟁을 재선포했습니다. 의협 상임이사회와 의쟁투는 연석회의에서 “영수회담의 약속 불이행과 엉터리 약사법을 수용할 수 없다”며 앞으로 정부와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실, 상용처방의약품 수를 600품목으로 제한하는 것과 약사의 대체조제를 대폭 허용한 점은 정부가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시행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가 `의사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같은 엉터리 정책에 분노한 전공의 역시 진료실을 박차고 투쟁의 길로 나섬으로써 전국 수련병원의 진료기능은 혼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전국 1만5,000여명의 전공의는 5일 `의료계 탄압 분쇄와 올바른 의약분업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아 줄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같은 순수한 의료계의 요구와 주장을 묵살한 채, 오히려 `수갑'과 `군화발'로 짓밟아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12일 중앙大에서 열기로 한 전국의사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장소를 연세대로 옮겨 강행과정에서 충돌사태로 이어지면서, 급기야 수십명이 부상하는 불행한 사태로 번지게 되었죠.

―사태를 수습하겠다던 정부의 무모한 대책에 전공의와 학생이 중심이 된 2차 폐업투쟁은 결국 전국 7만 의사의 분노를 자극, 투쟁 수위가 다시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국 시·군·구 의사 대표자 300여명은 20일 `참의료 실천 결의대회'를 열고 잘못된 정책이 올바르게 개선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최근 들어 의료계의 폐업 투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본 언론과 국민 역시 점차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 같아 퍽 다행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의료계에 새로운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했다”며 의료계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언론은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이번 기회에 잘못된 의료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침묵을 지켜 온 가톨릭교단,불교계 등 범 종교계는 “정부는 환자의 고통과 의료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솔직하고 실질적인 대화에 나서라”고 성명하고 나섰습니다.

잘못된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한국의 의료사태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 보도하면서 정부의 대응책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고, 전세계 의사회 연맹인 세계의사회(WMA) 역시 한국의 의료사태와 관련, “대한의사협회의 투쟁은 정당한 것이며, 의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정부가 객관적인 판단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준비안된 의약분업 시행은 현 정부의 가장 큰 실정(失政)으로 꼽혔습니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은 의료대란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더이상 재고 미룰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문제점들을 그대로 받아 들여 대책을 수립하고,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료계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김재정 의협 회장이 구속된 지 50여일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아직까지 신상진 의쟁투 위원장을 비롯해 한광수 서울시의사회장·최덕종 의쟁투 중앙위원·이철민 운영위원 등이 수감돼 있으며, 수많은 의사들이 정부의 감시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최선정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이 7일 부임하는 등 개각을 계기로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내세우고 있지만, 한손에는 언제든지 의료계를 내칠 채찍이 들려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 2차 폐업에 따른 의료계의 수입 손실은 점점 눈덩이 처럼 커지고 있고, 정책 부실에 따른 환자의 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사태해결을 위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화에 임하지 않는 한 의료대란은 장기화로 치달을 것입니다.

―정부에 대한 분노의 표출은 이제 교수들까지 가세하고 있습니다. 30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결의대회를 열고 “제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참의료 실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이어 31일에는 범 의료계가 참여한 의사결의대회를 통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한 전국 7만 의사의 대동단결 의지를 새롭게 다졌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002년까지 수가(酬價) 100%를 현실화 하는 등 올해말까지 `보건의료특별위원회'를 가동해 사태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고 기대하는 의사는 거의 없습니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고, 이를 뒷받침 할 재정(財政)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委는 의료인력, 의료정책, 수가, 약업발전 등 5개 전문위원회에서 의료계가 납득할 만한 청사진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단기간에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죠.

―정부가 의료사태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단편적 수단인 수가 인상보다는 잘못된 정책으로 뒤엉겨 있는 제도를 바로 잡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의약분업을 시행한다고 하면서 보건의료 관련 법령이 서로 모순 투성이인 현 상황에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미봉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의료계도 내부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25일 마지막 상임이사회를 주재한 김재정 의협회장은 상임이사 전원의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의협 뿐 아니라 전국 시도의사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여러가지 말못할 어려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단결된 힘이 필요합니다. 성큼 다가선 가을에, 값진 투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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