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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인터뷰] 이원영교수
[인터뷰] 이원영교수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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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부터 결핵협회와 함께 결핵유병률 5분의 1

인제(仁濟) 이원영(李沅永·내과학교실)교수가 이달말로 연세의대를 정년퇴임했다.
69년 연세의대 내과학교실 강사 대우로 모교에 몸담아 교육과 연구, 진료에 전념해온 이교수는 후학들에게 청년의 정열로 호흡기학에 천착해온 학자 이미지를 각인시켜 왔다.

의사라는 직업이 천생의 업인듯 잘 맞는 이교수의 꿈은 뜻밖에도 원자물리학자였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권유로 55년 연세의대에 입학하게 됐고 아버지의 지병이 계기가 돼 호흡기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이교수는 부모님의 권유로 의사로서의 첫발을 디뎠으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직업이었다”고 회고한다.

61∼66년 제18육군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던 중 1년간 미국 Fitzsimons General Hospital에서 연수를 받았으며, 석사와 박사를 모두 결핵을 주제로 다루었다.
"결핵만으론 호흡기질환 못 다룬다”

69년 모교에 부임한 이교수는 결핵만 갖고 호흡기질환을 다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결핵성질환을 공부하면서 만성폐쇄성질환의 개념을 쓰기 시작했고, 70년대 초반 마취과와 함께 급성호흡부전증(호흡곤란증)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면서 내과학회 심포지엄 주제로 다루는 등 이를 보편화한 장본인이다.

또 내시경 가운데 가장 어렵고 위험하다는 기관지내시경을 시작해 이제는 어느 병원에서나 표준진단술이 되게 했다.

"주위에서 정년퇴임을 하는 선배들을 지겨보면서 남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내 차례가 됐다”는 이교수는 돌아보면 아쉬운 일이 너무도 많은데 떠나게 돼 섭섭하다는 솔직한 심정을 피력했다.

결핵관리 열정…수 많은 업적

이교수는 영동세브란스병원이 개원하면서 83년부터 88년까지 이 곳에 파견돼 영동세브란스병원의 정착에도 큰 씨앗을 뿌렸다. “자원자를 모집했지만 개원 초 인 만큼 영동세브란스병원에 가길 다들 꺼렸습니다. 반강제로 동기 5명이 함께 갔는데 이들이 열심히 해 비교적 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핵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이 분야에 파고 들어 업적을 쌓아온 이교수는 결핵학회 부회장 및 회장, 대한결핵협회 학술이사 및 부회장으로 우리나라 결핵 관리에 열정을 쏟아왔다.

“65년 결핵협회와 학회가 공동으로 처음 유병률 조사를 실시한 이후 결핵유병률이 5분의 1로 줄어드는 등 한동안은 결핵관리에 성공했다고 자위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환자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환들이 늘어 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할 때 입니다.

미국의 경우 에이즈의 발생률이 높아지자 이에 따른 결핵의 치명적 확산을 우려해 국립보건원(NIH) 연구기금 중 일부를 결핵연구기금으로 전환하는 등 경각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결핵유병률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주위의 여러 상황에서 볼 때 경각심을 늦출 수 없습니다. 유병률 1%는 OECD 가입국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핵 퇴치 운동에는 인력, 재원, 학술적 토대가 따라야 하는데 재원확보가 어려운 점을 무엇보다도 우려했다.

“결핵협회가 법인체로서 예산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나마 크리스마스 씰 판매로 재원 모금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낮을 뿐 더러 판매 액수의 조정까지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씰 판매를 계절적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연간 사업으로 확대하고 공익광고차원에서 결핵홍보에 적극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4년 아시아태평양흉부질환학회(APCDC) 사무총장으로 이 대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일은 아직도 이교수의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국제학회를 국내에서 개최했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던 때로 연세의대 강당등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어 기억에 새롭단다.

'수준급 컴퓨터 실력’정평

이교수의 정년퇴임기념식에서 한 후배의사는 이교수의 연령에서 컴퓨터 대회를 연다면 이교수가 단연 일등은 맡아 놓은 것이라는 이야기로 분위를 살렸다. 이 말은 결코 인사치레가 아니다. 애플컴퓨터 시절부터 익힌 실력은 수준급으로 강의준비도 파워포인트 등으로 손수 준비하는 것을 이름 나 있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요즈음의 컴퓨터는 활용하는 사람의 능력보다 지나치게 좋아 다 활용하지 못한다”며 발전속도의 빠름을 지적한다.

최근의 의약분업 사태 등 어려운 때에 정년을 맞이해 마음이 무겁다는 이교수는 그동안 의사들이 의사표시에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폐업 등 오늘의 사태는 한계점이 폭발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의사들이 왜 이런 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는지 국민들이 빨리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정부도 근본원인을 알고 대처했으면 합니다.”

회갑, 정년 때 모두 기념논문집 발간을 사양한 이교수는 “이미 발간해 필요한 사람은 모두 갖고 있는데 일부러 돈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후배인 김성규교수는 정년퇴임식에서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결핵의 관리'(관리지침을 중심으로)를 역간해 헌정, 논문집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교수의 그동안의 학문적 업적을 치하했으며, 이교수는 내과 및 호흡기내과에 각각 2천만원, 1천만원의 발전기금을 전달, 후학들의 연구의지를 고취시키는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었다.

“정직하고 계획된 일을 이루도록 성실히 노력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것 ”을 좌우명으로 삼아온 이교수는 이제 연세의대를 떠나 9월1일부로 건양대의대 석좌교수로서 새로운 생을 개척할 예정이다.

온화한 포용력으로 내과학교실의 화합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기억되는 이교수는 “의사로서의 철학을 가질 것”을 후배의사들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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