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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시론 개원의사의 ABC
시론 개원의사의 ABC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7.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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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구(부산시의사회 대의원회 부의장)

요즘 각종 모임이나 세미나에서 의사들끼리 만나게 되면 신나는 이야기는 아예 들을 수가 없다. 모두 죽겠다는 소리이고 어떻게 하면 적자운영이라도 면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이야기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더니 무엇이 괜찮더라는 둥, 취미활동은 뭐가 좋고, 골프공은 뭐가 비거리가 많이 나더라는 등의 이야기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혹시 어디서 지난밤 양주라도 마셨다는 소리가 나오면 누구 기죽일 소리 하느냐며 즉시 여기저기서 농담 같은 화살이 쏟아진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럴진대 일반 서민들이야 오죽하랴 싶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허물어져가는 의사들의 위상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불행해지는 의사들로 인해서 행복해 지는 이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무조건 이기적이라는 허울을 씌워 모든 의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 하고 일부 의사들의 비리를 모든 의사들의 허물인 양 몰아세운 것은 이 사회에 무슨 이익이 되고 있는가? 관을 보지 않으면 곡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수많은 의사들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환자들에게는 가중된 고통이 현실로 드러날 때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국민은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지불해야 할 것인가?

그래도 의사는 이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의사마저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게 된다면 누가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며, 누가 그들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감싸줄 것인가? 의약분업이 시작될 즈음 '의사는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마지막 선비'라는 누군가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속속들이 허물어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의사는 이 사회를 지키는 진정한 선비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진료일선에서 환자를 보는 개원의사로서 어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사로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이 있다. 당장 배고픈 의사들에게는 꿈같은 소리이고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이 될지는 몰라도 그래도 의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일이고 환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이 어려운 시대에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다.

첫째, 질문을 많이 던져라.

몇 마디 증세만 듣고서 섣불리 판단하여 처방을 내다가는 오진하기 십상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는 만큼 환자들의 속마음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서로 피곤하여 건넨 몇 마디가 전부가 아니다. 성가실 만큼 꼬치꼬치 캐물어서 '이것이다!'하는 확신이 설 때 비로소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관심이고 아무도 돌보지 않던 환자의 마음속에는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 싹트는 순간이다.

둘째, 내진을 충실히 하라.

말만 듣고 대충 넘어가지 마라. 직접 손으로 확인하고 정말 밝히고자 하는 마음으로 청진기를 들이대어야 한다. 건성으로 흉내만 내는 진찰은 눈가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환자들도 쉽게 알아차린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혼자만의 착각으로 인해 그 환자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각종 검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셋째, 환자를 솔직하게 대하라.

자신의 실력으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환자에게 솔직하게 인정하라. 의사가 무슨 만물박사도 아니고 그 복잡한 의학 지식을 어찌 다 알 것인가? 자신이 아는 것만 치료해 주는 것이 바로 그 환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환자는 실험도구가 아니고 버려도 그만인 고장난 기계도 아니다. 모르는 것은 깨끗이 단념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를 가질 때 오히려 환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가 있다.

넷째, 동료의사를 잘 활용하라.

워낙 방대한 분야에다 깊이를 더하다보니 이제는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 하여도 혼자서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다. 세분화된 전문적 지식으로 잘 준비되어있는 동료를 활용해야 한다. 나보다 더 잘 돌보아 줄 수 있는 동료의사를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도 의사로서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한 셈이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개원의사의 수준에서 보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치료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져라.

국가고시나 전문의 자격 취득 후 4~5년이 지나면 알고 있던 지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리거나 많은 부분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 때부터는 수시로 배움의 기회를 찾아서 재충전을 받아야 한다. 요즘 각종 의학연수강좌나 세미나에 가보면 젊은 후배들도 많이 참석하지만 머리가 허연 선배 의사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끊임없이 배우면서 진료실을 지킬 때에 환자들에게 최적의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한다면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마라'는 것이다. 의사로서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진료하는 환자에 대하여 가장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내 환자를 돌보고 지켜내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충분한 보상이나 장래에 대한 보장은 없지만 '이 시대를 지키는 마지막 선비'라는 말에 자부심을 걸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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