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데 나이가 따로 있나요?

공부하는데 나이가 따로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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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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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회원(청주소아병원 원장)

<김숙자 회원>

이름

김숙자(55)

소속

청주소아병원 원장

경력

2002~

청주소아병원 개원

 

2000.3

한국유전학연구소 개소

 

2001~2002

미국 메이요클리닉 생화학 유전학 연수

 

1995~1999

미 보스턴 하바드의대 유전학 임상 펠로우 

 

1982~2002

김숙자소아과의원 원장

 

1980~1982

충북의료원(현 충주의료원) 소아과장

 

1975

충남의대 졸업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이 시대의 본보기가 될만한 분입니다."
이혜경 회원(청주 이진소아과의원 원장)
의사들이 환자 진료만 열심히 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끊임없는 도전의식으로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죠.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 앞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전하기를 거부한다면 스스로가 창피하게 느껴질 겁니다.
김숙자 선생님은 소아과 병원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다 뜻하신 바가 있어 40대 중반에 미국으로 떠나 소아과학을 다시 전공하셨습니다. 그후에도 하버드의대에서 유전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유전학 관련 전문의 자격증을 두 개나 취득했구요.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미국 학회에 자주 참석하는 등 꾸준히 지식을 업데이트 하고 계십니다. 또 자비를 털어 유전학 교실에 집중 투자해 연구소를 세워 유전 질환 사례 연구를 하고 계시고요. 우리나라 유전학 분야에 없어선 안 될 훌륭한 분이죠.
이 모든 과정이 유전학을 배우겠다는 열정 때문이었다니, 학문에 대한 열정과 끈기에 놀랄 따름입니다. 더구나 뇌출혈이라는 큰 건강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환자들을 진료하는 데는 두손두발 다 들었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자꾸만 현실에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김 선생님을 생각하며 힘을 얻곤합니다. 늘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학문에 대한 인간의 열정은 어디까지일까?

의사로서 임상현장에서 느꼈던 무능력함과 자괴감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10년이란 적지 않은 기간동안 유학생활을 한 김숙자 회원(청주소아병원 원장)을 만나봤다.

그는 현재 유전 질환에 있어 국내 몇 안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지만, 처음 소아과 의사가 됐을 때부터 유전질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개원해서 병원이 꽤 자리를 잡았을 때였죠. 병원에 환자가 많아 하루 종일 환자를 보느라 입이 아플 정도였어요. 그러던 어느날 한 아이를 봤는데,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보내보기도 했지만 결국 태어난지 3개월만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동생들마저 곧 세상을 떠나 제대로 진단도 받지 못한 채 삼 형제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 엄청난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유전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겁니다.”

그때부터 김 원장은 오후 5시면 진료를 접고 도서관에 달려가 새벽까지 책과 씨름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전질환에 대한 지식과 사례가 턱없이 부족해서 그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엔 미국 유학을 그렇게 오래하리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유전학 전문 병원이란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죠. 질량분석법을 배우고 나서 관심이 있어 쫓아다니며 복사를 한 자료만도 엄청납니다.”

미국 의사자격시험부터 시작해 레지던트 과정까지 모두 밟은 그는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유전학 전문의가 됐다. 하지만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생화학 유전학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뜻밖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막 공부한 것을 한국에서 제대로 적용해 보려던 찰나에 뇌출혈이 생겼습니다. 뇌수술 까지 받는 바람에 대학 교수직도 포기해야 했죠.”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더 많이 치료해주라는 하늘의 뜻인지 다행히도 그는 건강을 회복했고, 전국에 있는 환아와 부모들을 위해 병원의 규모를 늘려 입원실을 갖춘 소아전문병원을 열었다. 또 미국에서 배운 질량분석기 등 유전질환 검사를 위한 최신 장비를 갖춘 연구소를 세웠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유전 질환 검사 의뢰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만큼 유전 질환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함께 상의할 만한 의사나 기술자들이 턱없이 부족해 의문점이 생길 때마다 미국에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거는 일이 일상이 돼버렸죠.”

마지막으로 그는 개원하고 있는 개인 의사로서는 유전 질환 연구와 치료를 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며 유전 질환에 대한 사회적·학문적 관심을 거듭 강조했다.

“유전 질환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환자도 매우 많지만, 아직도 유전 질환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적인 지원도 미약한 수준입니다. 특히 제가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질량분석학을 임상과 접목, 응용하면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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