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 회원(청주소아병원 원장)
<김숙자 회원>
이름 |
김숙자(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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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청주소아병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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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2002~ |
청주소아병원 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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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3 |
한국유전학연구소 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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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2 |
미국 메이요클리닉 생화학 유전학 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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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999 |
미 보스턴 하바드의대 유전학 임상 펠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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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2002 |
김숙자소아과의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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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2 |
충북의료원(현 충주의료원) 소아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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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
충남의대 졸업 |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이 시대의 본보기가 될만한 분입니다." 이혜경 회원(청주 이진소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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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대한 인간의 열정은 어디까지일까?
의사로서 임상현장에서 느꼈던 무능력함과 자괴감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10년이란 적지 않은 기간동안 유학생활을 한 김숙자 회원(청주소아병원 원장)을 만나봤다.
그는 현재 유전 질환에 있어 국내 몇 안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지만, 처음 소아과 의사가 됐을 때부터 유전질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개원해서 병원이 꽤 자리를 잡았을 때였죠. 병원에 환자가 많아 하루 종일 환자를 보느라 입이 아플 정도였어요. 그러던 어느날 한 아이를 봤는데,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보내보기도 했지만 결국 태어난지 3개월만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동생들마저 곧 세상을 떠나 제대로 진단도 받지 못한 채 삼 형제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 엄청난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유전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겁니다.”
그때부터 김 원장은 오후 5시면 진료를 접고 도서관에 달려가 새벽까지 책과 씨름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전질환에 대한 지식과 사례가 턱없이 부족해서 그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엔 미국 유학을 그렇게 오래하리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유전학 전문 병원이란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죠. 질량분석법을 배우고 나서 관심이 있어 쫓아다니며 복사를 한 자료만도 엄청납니다.”
미국 의사자격시험부터 시작해 레지던트 과정까지 모두 밟은 그는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유전학 전문의가 됐다. 하지만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생화학 유전학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는 뜻밖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막 공부한 것을 한국에서 제대로 적용해 보려던 찰나에 뇌출혈이 생겼습니다. 뇌수술 까지 받는 바람에 대학 교수직도 포기해야 했죠.”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더 많이 치료해주라는 하늘의 뜻인지 다행히도 그는 건강을 회복했고, 전국에 있는 환아와 부모들을 위해 병원의 규모를 늘려 입원실을 갖춘 소아전문병원을 열었다. 또 미국에서 배운 질량분석기 등 유전질환 검사를 위한 최신 장비를 갖춘 연구소를 세웠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유전 질환 검사 의뢰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만큼 유전 질환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함께 상의할 만한 의사나 기술자들이 턱없이 부족해 의문점이 생길 때마다 미국에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거는 일이 일상이 돼버렸죠.”
마지막으로 그는 개원하고 있는 개인 의사로서는 유전 질환 연구와 치료를 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며 유전 질환에 대한 사회적·학문적 관심을 거듭 강조했다.
“유전 질환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환자도 매우 많지만, 아직도 유전 질환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적인 지원도 미약한 수준입니다. 특히 제가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질량분석학을 임상과 접목, 응용하면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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