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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폐경여성의 장기 HRT 정말 해로운가?

시론 폐경여성의 장기 HRT 정말 해로운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8.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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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회(대한폐경학회 명예회장·서울여대 객원교수)

지난 8월 11일자 <의협신문>에 게재된 '한국의 폐경기 여성에게 장기적 여성호르몬 치료는 안전한가?'라는 이종구 박사의 글을 읽고 한 때 폐경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여보고자 적지 않은 시간과 정력을 쏟았던 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반론하고자 한다.

여성호르몬요법(HRT)의 득실이나 지난 2002년 및 그 이후 WHI의 발표내용들은 의사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많은 경우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 다만 심혈관질환이 29%가 증가한다는 방식의 표현은 일반인들은 물론 통계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의사들마저도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위약 군에서 1000명당 3명의 환자가 생길 때 프레마린+프로베라 군은 1000명당 3.7명이 생겨 실제로 증가한 발생위험률은 1000명당 0.7명이라는 내용을 함께 알려야 한다. 왜냐하면 연간 1000명 중 1명 미만의 위험률 증가는 한국인의 경우 그 이해득실을 고려할 때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제목에서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라고 했기 때문에 마치 호르몬치료가 이에 어긋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근거중심의학이라는 것은 결코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니며 이미 19세기 때 미국으로부터 나온 사고에 근거한다. 권위중심의학에 거슬러 나온 이 개념은 "각 환자의 치료 결정에 있어서 양심적이고 뚜렷하며 분별력 있는 최선의 방법을 구하는 것"으로 내적 요소인 각자의 임상적인 전문성과 외적 요소인 의학의 기본지식이나 적절하게 시행된 연구 결과에 의존하여 환자치료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맹점무작위연구(double blind randomized study)가 반드시 우선하는 분야는 아니다. 우리는 통계의 맹점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좋은 임상적인 사례가 때로는 몇 개의 무작위연구보다 낫다는 얘기도 심신의학에서는 하고 있다. 또 외적인 요소 중에서도 의학의 기본지식이 임상연구에 우선함을 부정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여성은 여성호르몬이 결핍된 폐경 후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증가한다. 특히 LDL-C는 증가하고, HDL-C가 감소하며 이로 인해 심혈관질환의 빈도가 증가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하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지고, LDL-C는 내려가며, HDL-C가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성호르몬을 줬더니 심혈관질환이 증가했다는 얘긴데 이 때 원리와 연구결과 중 무엇이 더 우선하는 근거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의학이 기본적인 원리가 이렇게까지 무시되는 것이라면 아마 필자는 일찍이 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긴 역사를 갖고 있는 호르몬 치료의 근거가 부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사족으로 부언한다.

둘째, 폐경전문가들이 WHI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HRT를 계속하는 이유를 오해한 듯해서 이를 해명하고자 한다. WHI 연구는 매우 엄격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행된 연구라 했지만 우리는 이 연구를 적절하게 시행한 것이라 평가하지 않는다. 연구 도중 중단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그 정도의 결과라면 중단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만660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본인들 마음대로 들락날락해서 결국 그 반수인 8506명에서 자료가 나왔고, 대상자의 평균연령이 63세이며, 70세 이상의 고령자만도 20%가 넘었다. 흡연경력자는 40%가 넘고 연구 당시에 흡연하던 여성만도 10%였으며, 고혈압 약을 먹는 여성이 36%나 됐다. 심근경색의 병력자가 140명, 협심증 환자가 238명이었고, 뇌졸중이나 심부정맥혈전의 병력이 있던 여성이 각각 61명과 79명이었다. 이들 중 비교적 건강한 여성들은 5년 이상 약을 사용하는데 지쳐 포기한 경우가 많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여성들은 열심히 약을 먹어 통계의 대상이 되었던 점 등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결과가 안 좋으면 억울하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HRT를 계속하는 이유를 통해 독자들의 오해를 풀고 싶다. 폐경전문가들도 요즈음 같은 세태에 'Better safe than sorry'를 할 줄 몰라서, 아니 행여 HRT에 전혀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겠는가? 그보다도 필자는 환자에게 처방만 내주는 HRT를 위해서 위험부담을 마다 않는 의사들을 정말 높이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여성들 중에는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산 분들이 많다. 전쟁으로, 가난으로 그리고 엄격한 남성위주의 유교문화 때문에 고생한 분들이다. 그래서 많은 뜻있는 의사들이 이들의 '삶의 질' 고양을 위해 앞장서기로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10년 이상 호르몬을 투여 받은 여성들이 적지 않다. 호르몬을 장기적으로 투여 받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훨씬 더 젊어 보이고, 더 건강하고, 더 긍정적이고, 더 자존감이 높으며, 성적으로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많은 경우에서 골밀도는 오히려 더 증가해 있고, 대부분 HRT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설혹 몇 가지 질환의 발생빈도가 좀 높다는 보고가 있다 해도 이들의 대부분은 개의치 않고 호르몬 치료를 계속하길 원한다. 따라서 여성에게 해를 주므로 중단을 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진리나 사실이 아니다.

넷째, 미국인들이 프레마린과 프로베라만으로 한 연구가 HRT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제제보다 여성호르몬의 양이 5배 이상 더 많은 먹는 피임약은 그동안 별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았었던 것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미국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로 일하던 1960년대만 해도 임신 중에 유방암을 발견하면 난소, 부신까지 제거하고 심지어는 뇌하수체까지 제거할 정도로 여성호르몬이 유방암의 원인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지금은 임신을 지속시키면서 치료를 하고 있다. 물론 임신 중의 여성호르몬 치는 HRT 용량의 몇 백배가 넘는다.

투여 방법에 따라서도 그 결과가 다르다. 예를 들면 경피요법은 담석증과도 관계가 없고, triglyceride의 증가도 없으며, 혈전 가능성의 증가도 없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자기네 시장에서 쓰던 약만으로 우기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난 1개월간 방학을 이용해 미국에 가 있었는데, 그곳 유선 TV방송에서 얼마나 많은 대체요법제들이 선전되고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정통의학이 도전을 받고 사이비 의학이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는 현장을 보면서 거기에 혹시 의학의 외적인 거대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투여방법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나는데 성분이 다른 약을 썼을 때 어떤 결과를 보일까는 자명한 일이지만 그들은 유럽이나 그 외 다른 국가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값도 비싸고 효과도 적으며, 의료보험도 안 되는 건강식품제를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호르몬대신 쓰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다섯째, 미국의 HRT에 대한 지침을 유독 한국의 의료계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부분에 대해 우리는 대한폐경학회에서 만든 지침에 따르면 된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세계폐경학회(IMS),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유럽폐경학회(EMS), 북미주폐경학회(NAMS), 라틴아메리카폐경학회(LAMS) 등 각 나라의 대표들은 결코 HRT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물론 심혈관질환의 빈도가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비슷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만 중풍이 한국여성에게 좀 더 온다고는 하지만 혹시라도 관계가 있을 허혈성 질환이 아닌 뇌출혈의 빈도가 좀 높아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유방암은 확실히 빈도가 낮아 백인의 약 1/6 정도에다가 우리나라 여성들은 백인들과 반대로 그 2/3가 폐경 전에 오기 때문에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필자를 포함해 누구도 진리와 사실과 가치에 혼동이 없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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