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인정해야 합니다"
"삼각관계 인정해야 합니다"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5.08.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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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로서 <의료사회학> 번역본 펴낸 박호진 원장

청주에서 박내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박호진 원장이 불쑥 신문사를 찾아왔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의료의 공공성 이론'을 하나하나 해부하는데 취미를 붙이더니, 토론회나 좌담회 때마다 "공공성의 의미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며 기성 학계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두꺼운 책 한 권이 허리춤에 끼어 있음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 한 권 번역했습니다. 혼자 한 것은 아니고…"

한 번 살펴봐 달라는 말 속에 가벼운 떨림이 감지됐다.

651쪽 분량의 <의료사회학>. 첫 느낌부터 묵직했다.

김경수(부산 김경수내과의원)·안용항(인천 갈산중앙의원)·이윤수(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 등 의기를 투합한 4명의 의사들이 올해 초부터 땀을 흘렸다고 했다.  

 

▲ 박호진 원장

■ 사회 올바로 보는 눈 길러야

이 책의 원작자는 미국 앨러바마 주립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는 윌리엄 C. 코커햄 교수. 의료사회학 교과서로 9차 개정판까지 나올 만큼 의료사회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의료사회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집필된 이 책은 의료사회학의 기본인 개념과 이론에서부터 응용편인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정보화사회로 사회환경이 급격히 변화했음에도 진찰실에 갇혀 지내던 의사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지적한 박 원장은 "지금이라도 사회적으로 실재하는 '제3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동기도 '사회에 대한 의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의사-환자'의 양자관계였지만 이젠 아닙니다. '의사-환자-사회'라는 삼각관계에다가 상호작용까지 더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많은 의사들이 과거의 '의사-환자' 관계가 모두인 줄 압니다. 하루 빨리 착각에서 깨어나야죠."

박 원장은 의료사회학의 주된 활동영역은 건강과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요인과, 사회적 시책에 관련된 문제 분석과 이론화에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사회학이 다루는 주요 분야는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측면, 의료종사자와 이용자의 사회적 행태, 보건조직과 기관의 사회적 기능, 의료서비스의 사회적 양식, 의료체계와 다른 제도 간의 관계, 의사와 의료협력원(paramedical staff), 병원 및 기타 여러 시설, 의료제도나 사회보장제도의 검토 등 다양하단다.

"이 책은 '왜 의사들 마음을 몰라주냐'며 답답하고 억울해 했을 이 땅의 의사들이 꼭 보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의사-환자' 양자관계는 착각

"이 책을 읽는 의사들은 사회학이라는 거울에 비친 객관적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그러한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된다면 의사들은 좀 더 완전한 모습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박 원장은 "사회학이 바라보는 적나라한 의사의 모습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기르고, 해답을 찾아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며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의사들과 의료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원저자의 여러 가지 주장 가운데 권리에 집착하기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부분이 백미로 꼽을만하다고 했다. 사회학 대가들의 학설을 평범한 문장과 편안한 말투로 설명한 점, 수많은 사회이론을 의료의 영역에서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원저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할 정도로 역자들은 단순한 번역에 머물지 만족하지 않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의료사회학>에 매달렸다. 그 결과 원저에서 10여 곳의 오류를 발견하고, 원저자에게 연락해 교정하겠다는 응답과 감사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불의에 항거한 의사에게 바친다

이 책은 사회와의 교류와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앞장서고 있는 '의료와 사회 포럼'(공동대표 박양동·경상남도의사회 부회장)과 한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손을 맞잡은 채 펼치고 있는 메디컬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첫 테이프는 올해 초 <의료윤리>(래난 길론 지음·박상혁 옮김)가 끊었다. 장사에 급급하기 보다는 양서를 펴내는데 관심이 더 많은 출판사 '아카넷'(02-6366-0511)이 출판을 도맡았다.

박 원장은 이 책 서문에 전체 의사를 대신해 옥고를 치른 김재정·박현승·배창환·사승언·신상진·이철민·최덕종·한광수·홍성주 등 9명과 지금도 재판 중인 17명의 의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올려놓았다. 이와 함께 "불의에 항거했던 모든 의사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는 문구도 써 넣었다.

"5년 전 4만여명의 의사들이 태풍과 비보라를 아랑곳 않고 보라매공원 흙탕물 속에 주저앉아 목을 놓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박 원장은 "8월 31일(수) 오후 7시 의협 동아홀에서 출판기념식에서 불의에 항거했던 왕년의 투사들에게 <의료사회학>을 헌사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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