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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일의학의 역사 청산
시론 독일의학의 역사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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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0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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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네덜란드가 세계최초의 안락사합법국가로 태어나자 가장먼저 로마 법왕청에서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며, 여기에 이어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독일의 법무상은 안락사 법을 비난했다.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embly)에서 존엄사(연명의료 중단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허용견해를 발표한 소위 리스본(Lisbon)선언을 한 해가 1981년인데, 같은 해에 독일의사회(서독)에서도 존엄사를 수요했으며, 1979년에 이미 서독의회에서는 "존엄사의 지침서"를 의결했을 정도로 독일은 의료윤리의 최선진국이다.

그러나 안락사만은 철저히 반대하는 독일은 일직이 형법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규정하여 그것이 고의에 의한 경우에는 5년에서 종신까지의 징역에 처한다.

독일이 안락사행위에 대해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은 과거 나치시대의 뼈저린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독일은 이웃나라 네덜란드가 안락사국가로 탄성한데 대해 가장먼저 거부반응을 보임으로서 그들의 과거 못난 역사청산의 일환으로, 다음에 설명할 나치스시대의 의학에 속하는 "약자도태 법" 즉 나치스안락사(Mercy killing)의 망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욕이 역력히 보인다.

왜곡교과서문제로 못난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여담이지만 해방 후 한국에 의학교과서가 없던 때라 일본 고서점(古書店)에서 구입한 일본의학서적을 참고서로 이용했었는데, 생리학 교과서는 동경대학교수 하시다-구니히코(橋田國彦)가 쓴 책이 주였다. 하시다는 일본의학계의 석학으로 전쟁시 일본의 후생(보건부)장관이었다. 2차대전후 많은 군인을 포함한 전쟁범죄자들이 자결했는데, 하시다도 그중 한사람이다.

학자출신 장관이 전쟁책임을 통감하고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고 "제가 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많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구주대학 인체실험사건, 중국에서의 731부대에 의한 "인체실험공장"등 의학을 악용한 일본제국의 죄악상이 속속 탄로됨에 따라 하시다의 자살동기에 대해서 짐작 가는 바 있었다.

말썽 많은 일본 새 역사교과서에는 그들이 인륜에 역행해서 저지른 "위안부"와 함께 731부대의 기록을 아예 삭제해버렸다. 현재 일본은 과거역사청산은커녕 우향우로 방향전환을 하여 못난 "황국사관"시대로 되돌아가고 있으니, 독일의 철저한 역사청산과 정반대 방향을 걷고있는 것이다. 서독수상이 한겨울 추운 날 바르샤바의 학살기념비 앞에 무렵 꿇고 사죄하며 행동으로 과거사를 참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독일국가의 참된 속죄를 실감한다.

그들은 지금 나치스 안락사의 죄악상을 국민에게 진실대로 알림으로서 정치면에서만이 아니라, 의학분야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는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스정권은 1933년 "약자도태 법"이라 할 우생단종법(優生斷種法. 유전질환을 가진 자손을 피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유전적 장애를 가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여기엔 정신박약자, 정신분열환자, 전간 환자, 맹인, 약물 및 알코올 중독자, 기동이 힘들거나 보기에 흉한 신체불구자가 포함되었다.

이 법이 시행 된지 3년 동안 여기에 해당된 자 22만5천명이 단종(castration)되었다. 독일민족의 피가 우수하다(Deutchland uber alles)라는 자만심에 의해, 적극적 우생책을 실시하여 "생명의 원천(Lebensborn)"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생물학적으로 건전한 부부에게는 다산(多産)을 장려하며 정부보조금을 지불했다.

여기에 더하여 1939년 10월 히틀러는 "장애인의 안락사작전"이라 할 T4 작전(T4-Aktion)을 비밀리에 계획하여 실천에 옮겼다. 이 작전에 의하여 3세미만의 기형아와 신체불구자, 그리고 정신박약아는 모두 등록을 의무화시켰다. 이 어린이들을 최신치료를 받기 위해 소아과 의료시설에 입원시켰다고 부모에게 허위통보 했다.

그리고 각 병원과 정신병요양소에 통고하여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 모든 종류의 정신 신경병환자와 범죄성분이 있는 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흑인과 유태인과 집시족속들은 조금만 의문이 있어도 이 작전에 포함시켰다.

전국에 병원을 가장한 6개소의 살인센터가 설치되어 여기서 가스실과 독약주사 등을 통해 약 1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1941년 8월에 작전명령이 중단됐다지만, 그 후 유태인 대학살로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공할 나치독일의 비인도적인 인체실험과 안락사행위는 전쟁 후 뉴렌버그 전범재판에서 규명된바 있으며, 여기에 적극 관여한 의사들이 처벌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끔직한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히틀러이며, 의사나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인식이 주가 되어 의학윤리의 측면에서 이러한 비인도적인 사건들이 은폐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 베를린의사회발족에 즈음한 발표는 의미심장한바 있어 소개해본다.

"우리 의사회는 나치즘 하에서 의사들이 행한 역할과, 잊을 수 없는 희생자들의 고통을 상기하는 바이다. 의사조직을 결성하는 우리는 자신의 과거와 나치즘에 관여한 의사들의 책임을 명백히 밝혀야만 한다-역사를 되돌아볼 때 의사윤리가 내부에서 파괴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고-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재현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충심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이와 같은 독일의학의 역사인식은 위안부문제와 731부대(중국에서 일본의 인체실험부대)를 왜곡교과서에서 삭제해버린 일본이 마땅히 배워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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