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근 회원(연세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오기근 회원>
이름 |
오기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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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연세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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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2004~ |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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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5 |
대한유방검진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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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1 |
대한방사선의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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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1 |
연세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유방암센터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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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997 |
대한초음파의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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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International Asso. of Breast Ultrasound 국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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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
연세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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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연세대 의학박사 취득 |
"의료계의 에너자이저 교수님이십니다." 전미선 교수(아주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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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있는 20대가 진정한 늙은이다."
오기근 연세의대 교수는 겉보기 나이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렇다.
오 교수는 일선에서 안경 너머로 세상을 관망하는 노교수들과는 달랐다. 오 교수는
어느 20대보다도 열정적이었고 어느 30대보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오 교수는
은퇴를 권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사람이었다.
암 검진 분야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일정도로 그는 유방암 검진의 대모이자 여성 교육 및 연구의 선구자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 맘모그래피 촬영장치가 없을 시절 유방촬영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고, 유방암 검진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며, 암 치료에 대한 관심조차 미약했을 때부터 이미 조기발견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의사가 됐을 땐 여의사가 별로 없었죠. 당시만 해도 유방암 환자의 수술은 유방을 전부 드러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여성 환자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여의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서 돕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는 유방암 환자들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 촉망받는 젊은 여의사가 유방암에 뛰어든 이후 노년기로 접어들 때까지 우리나라 유방암 역사에 남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암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전 가족 나아가 국가를 황폐하게 만드는 병마입니다. 이런 암을 정복하기 위해선 효과적인 치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그마한 암을 빨리 발견해서 치료하면 한 생명을 구하고, 가족을 구하고, 국가를 구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유방암검진을 받아야 하고, 의사들은 조기발견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검사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해야 합니다.”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간다. 그는 요즘 환자들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유방암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방암 촬영장치의 정도관리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유방암 검진 장비들이 날로 좋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차도 몇 년 지나면 낡아 성능이 떨어지듯 아무리 좋은 장비라도 소중히 다루고 열심히 관리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죠.”
20년전부터 의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분야에 이동형 유방촬영장치를 실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그에게 지인들조차 말도 안된다는 비난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암 검진의 중요성이 사회적인 호응을 얻고 있고,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암 검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상을 받거나 칭찬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단지 짧게 왔다 가는 일생동안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램 뿐이죠."
인터뷰 내내 자신을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주책맞은 늙은이"라고 표현하는 오 교수는 부디 자신을 그저 현위치에서 할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를 아무리 평범하다고 강조해도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데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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