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외과의사로 불리고 싶습니다

성실한 외과의사로 불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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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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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회원(포천중문의대 분당차병원장)

<이경식 회원>

이름

이경식(68)

소속

포천중문의대 분당차병원장

경력

2002~

포천중문의대 분당차병원장

 

1998~1999

대한외과학회장

 

1995~1996

대한소화기학회장

 

1995~1999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장

 

1993~1995

연세의료원 암센타 병원장

 

1983~1985

연세의대 부속 영동병원 외과과장

 

1977

미국 뉴욕 슬로언 케터링병원 Breast Service 연수

 

1969~2002

연세의대 외과 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1961

연세의대 졸업

 

"한국 유방암 역사의 산증인이십니다."
오기근 회원(연세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이경식 선생님은 제가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는 분입니다. 제가 유방암 검진 분야에서 이만한 공적을 이룰 수 있게 된 데는 이 선생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저를 유방암 검진 분야로 이끌어주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의를 마치고 세부 전공을 선택할 때 즈음, 이 원장님이 "오 선생, 유방암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어?"하며 적극 권유하셨습니다.
그 때만해도 여의사가 거의 없었을 때인데, 이 선생님이 앞에서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여의사인 제가 지금처럼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요?
제가 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훌륭한 외과의로서 병원장보다는 서전(외과의)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명언을 남기실 정도로 의사로서의 자긍심과 소명감이 대단하시거든요.
국내 최다 유방암 수술 사례를 기록하실 정도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미세침습수술과 유방재건 및 보존술을 적극 도입하는 등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하셨습니다.
선생님처럼 열심히 환자를 치료하는 분이 계시기에 저처럼 검진분야에서 매진하는 의사가 더욱 힘이 납니다. 지금은 비록 연세의대 교수에서 은퇴하셨지만, 아직도 병원에서 인술을 펼치고 계십니다. 모쪼록 항상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유방촬영술을 도입했고, 국내 최다 유방암 수술 치료 대기록을 세웠으며, 세브란스병원 암연구소장·암센터원장·세브란스병원장 등을 지냈다.이밖에도 그가 세운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그가 외과의사로 평생동안 봉직해 온 세브란스병원을 떠나온 지 3년이 지났다. 1961년 졸업한 이래 40여년간 줄곧 연세의대에 몸을 담아온 탓에 세브란스병원은 그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이제는 새로운 곳에 둥지를 텄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자 치료에 열정적인 그는 매주 한 번씩 서울을 오가면서 진료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유방암 수술을 직접 집도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가 환자 곁을 떠나기란 정말 힘든 일인 듯 싶다.

"비록 대학에선 은퇴했지만, 여전히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감사합니다. 외과의사로 평생을 살아온데 대해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70년대 유방암에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많을 땐 1년에 300건의 수술을 하기도 할 정도로 유방암 환자가 늘어났습니다. 환자가 늘어났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많은 환자들이 치료 후에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의사란 직업은 환자의 질병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환자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괴로움과 싸워야 하는 일일런지도 모른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다시금 가운을 입게 만드는 것 역시 환자다.

특히 '암'이란 질병은 더더욱 그렇다. 유방암 분야에선 국내 최고 권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에게도 좌절의 시간은 있었다.

▲ 1999년 유방암 환자였던 차연혜씨가 유방암 연구기금 3천만원을 기부했다.

  "암에 대한 치료와 검진 분야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나라 사망 원인 중 1위일 정도로 아직도 암은 중증 질환에 속하죠. 예후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때 의사로서 그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족집게 의사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치료받으면 병이 나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그가 수천명의 환자 중 유독 애착이 간다며 꼽은 환자는 안타깝게도 발병 11년만에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며칠 전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94년 처음 만났습니다. 진행성 유방암 환자였는데, 수술한지 6년 후에 재발했죠.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 다음에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면 꼭 살려달라고 연구기금 3천만원을 기부했습니다. 지금도 그 분을 떠올리며 '더 공부하고 더 실력을 갖춰야겠구나'하고 다짐합니다. 의사들에게 용기를 준 그 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늘 병원장 보다는 환자 곁에 머무는 외과의사로 불리우고 싶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요즘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외과가 외면받는 현실을 보면서 착찹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젠 의학이 단순히 생명을 구하는 분야가 아니라, 삶의 질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예방하는 분야가 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시기에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하다면 아무리 의학이 발전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의료계의 선배, 존경받는 의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의료계 현실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개개인이 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면 어떨까요?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하는 많은 환자들 곁에서 조금이나마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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