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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는 '도전'의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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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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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정 회원(연세의대 외과 교수)

<이우정 회원>

이름

이우정

소속

연세의대 외과 교수

경력

2005. 7

국내 최초 로봇(다빈치) 수술 성공

 

2005. 3~

세브란스병원 내시경센터 원장

 

1997~1996

미 테네시주 내수빌 반더빌트 의대 종양외과 연구강사

 

1993~1996

고려대 의학과 병리학 박사학위 취득

 

1990~1993

연세대 의학과 석사학위 취득

 

1982

연세의대 졸업

 

"손재주와 판단력을 겸비한 훌륭한 외과의사"
이경식 회원(분당차병원장)
누굴 추천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앞으로의 의료계를 짊어질 유망한 의사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우정 선생은 제가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제 밑에서 레지던트와 펠로우 과정을 거쳐간 후배입니다. 세부 전공이 나누어져있지 않았을 때인데, 이 선생은 제가 외과과장이 된 후 처음으로 펠로우 과정 2년 내내 가르친 제자가 됐죠. 이 선생은 레지던트 시절부터 손재주가 참 좋아서 훌륭한 외과의사감이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전 유방암을 주로 했지만, 이 선생은 당시 제가 잘 안하던 담도, 췌장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제가 하는 수술과 그리 많이 겹치지 않았는데도 담도, 췌장 분야에서 훌륭한 외과의사로 성장한 것을 보면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언젠가 한번은 제가 “자넨 자수성가 했네”하고 칭찬해준 적이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익숙치 않던 때부터 기계를 다루는 데 재능이 있어서 여러 기기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곤 했죠.의국이나 교수실 컴퓨터가 고장나면 늘 그 친구가 고쳐주곤 했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지금은 복강경 수술의 달인이 됐습니다. 예전에야 외과 수술을 했다 하면 전체 배를 열어서 수술했지만, 요즘은 최소한으로 절개하는 복강경 수술이 보편화됐습니다. 이 선생 같은 친구가 각광받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밖에도 오랜 동안 로봇 연구를 해오더니 얼마전에는 국내 최초로 로봇 수술에도 성공했더군요. 그 친구 크게 될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의학을 한단계 끌어올리고 발전시키는 활동을 계속하길 바랍니다.
다빈치 로봇을 사용해 수술을 시행하는 이우정 교수의 모습.

 이우정 연세의대 외과 교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쯤 될 듯싶다. 성취가 느끼는 희열감은 도전에서 풍기는 끈기와 노력 덕분이리라. 그가 복강경 수술의 달인이자, 의료계에 몇   안되는 디지털 리더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그의 도전정신이 큰 몫을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어렸을 적부터 그의 손재주는 남달랐다. 적어도 숨바꼭질 하던 어린이들과는 가지고 노는 장난감부터 달랐으니까.

“어린시절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님도 의사셨지만 어떤 기계공보다 전기제품들을 잘 수리하셨거든요. 저도 그런 아버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기계들에 관심이 많아졌고, 이것저것 뜯고, 고치고, 만지고 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을 정도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또는 그 혼자서 발명한 특허품만도 상당하다. 비록 학창시절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의대에 진학하고 나서도 전자공학에 대한 관심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아버님이 집안 모든 기계를 다 고치셨지만 유독 라디오와 TV는 못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의대본과시절 방학 내내 꼬박 두달 동안 하루종일 종로에 있는 라디오TV수리학원에 다녔습니다. 비록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전파사를 낼 수 있는 3급기사 자격증을 땄죠.”

그 뿐 아니라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를 졸라 당시 포니차 만큼이나 비싸던 중고 타자기를 샀다. 그런 그에게 컴퓨터는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재밌는 물건이었다.

“외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늘 하는 일이 수술 기록을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매일 비슷비슷한 수술을 하다보니 요령을 피우게 되더군요. 1983년에 8bit 짜리 애플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컴퓨터로 한번 작성한 후에 필요한 내용만 그때그때 고치면 되니까 정말 편리하더군요.”

물론 컴퓨터로 작성하는 수술 기록이 흔치 않다보니 의무기록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단다. 그의 뚝심과 논리 덕분에 컴퓨터로 작성한 수술 기록이 최초로 정식 인정받게 됐고, 지금은 모든 의무기록을 컴퓨터로 작성하는 시대가 됐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리더인 셈이다.    

그는 타자기와 전파사 자격증을 아버님에게 받은 큰 선물이자 인생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그는 비슷한 연배가 느끼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외과 펠로우를 마치고 영동 세브란스에서 근무하는데 당시 외과과장님이시던 김병로 선생님의 도움으로 우연히 복강경을 접하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래서 계속 공부했고, 지금은 복강경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자신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세브란스병원 내시경센터의 소장 자리에 그는 정말 적합한 인물이다. 복강경을 다루는 솜씨나 수술 실적이 뛰어남은 물론이요, 직접 만든 복강경 훈련 기기들을 상품화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국내 최초로 내시경 로봇 수술에 성공했다.

“훌륭한 스승님이자 대선배이신 이경식 선생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셨다니 이루 말할 수없이 영광스럽습니다. 수술 솜씨야 이 선생님이 훨씬 훌륭하시지만, 기계 다루는 능력이 유별난 저를 좋게 보셨나봅니다.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국내 의사들 중 기계에 관심있는 사람이 드물어 안타깝습니다.”

국내 의학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선 첨단 장비들을 도입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역사를 되짚어 보는 데에도 열심이다.

얼마 전에는 자신이 40여년 동안 모으고 가꿔 온 손때 묻은 의학용 카메라들을 연세의대에 기증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지금까지의 내시경 장비들을 모아서 함께 전시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과거를 미래의 바탕으로 삼으려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디지털 리더의 모습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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