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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코커햄의 <의료사회학>을 읽고 생각해 본 우리의 현실과 장래

시론 코커햄의 <의료사회학>을 읽고 생각해 본 우리의 현실과 장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9.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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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수(경기 안양·양이비인후과의원·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 겸 예결위 간사)

▲ 양재수 운영위원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우리의 현실과 장래를 생각하고 찬찬히 읽어나가는 동안 우러나오는 진국을 맛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책이 매우 훌륭한 저작일 뿐 아니라 현재는 물론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얼핏 의료사회학의 개론서로 보이지만 개론서를 넘어선다고 평가하고 싶다. 풍부한 인용문헌들 뿐만 아니라 의료현장과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설명하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와 도처에서 우리의 눈을 크게 뜨이게 하는 내용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계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과거와 현재의 의료 현상을 분석하고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아가야 하는 시대상황에서 이 책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제4장 '건강과 사회인구학'에서 영국의 평등의료에 관해 "빈곤과 사회계급의 차이는 그대로였다"며 "의료의 평등화만으로는 사회계급간의 건강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한국의료는 분배와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진료를 강요하고 있다. 역대 정권 담당자들은 저소득계층의 건강에 대한 정부의 책무를 방기하고, 의사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넘어, 의료보험 강제지정제를 통해  비현실적인 낮은 의료수가를 강요해 왔다. 이로인해 의료계는 황폐화 되고, 의료의 왜곡화가 심화되고 있다.

제8장 '치유선택'에서는 여러 가지 보완요법에 관한 개괄적 설명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보완요법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부 의사들은 이들 중 일부를 시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위 한방요법도 보완요법의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이들에 대해 철저히 과학적 검증을 하여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의 한 분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과 결정을 함으로써 현대 정통의학을 확대·발전시킴은 물론 한방의료를 흡수·통합하여 의료일원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제10장과 11장은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이다. 저자는 의사의 전문적 지배에서 '의사직의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하이드와 울프의 조사보고서를 인용하여 미국 의사협회의 전반적인 힘은 △의사직에 대한 지배력 △강력한 경제적 지위 △의사의 사회적 신분 등 세 가지에서 기인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대한의사협회의 실상과 위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의사사회의 여러 조직들에 관해 전반적으로 냉정한 성찰을 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의사들과 의료계의 환경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어떻게 변화되도록 해야 하는가? 총액계약제와 건강보험의 기금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과 영리의료법인의 허용은 우리에게 밝고 희망찬 미래를 보장해줄 것인가? 민간의료와의 상충 없이 공공의료의 확충을 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욱 더 근본적인 문제로, 사회의 변화, 과학기술의 빠른 진보, 이에 따른 국민들의 의식과 의료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우리 의사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수정하고 새로이 확립해 나가야 하는가? 등등 모두 쉬운 문제들이 아니다.

제11장 '의사와 변화하는 사회'의 주요 내용은 지금 우리 의사들이 경험하고 있거나 곧 우리에게 닥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들이다. 여기서는 미국  의료전문주의의 폐해와 비판, 의료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정부의 규제, 관리의료에 따른 의사의 권위 감소, 기업의료에서 의사의 자율성 상실, 일반국민의 지식 성장과 소비자주의의 발달에 따른 의사-환자 관계의 변화, 의사의 탈전문주의화와 피고용인화 등을 볼 수 있다.

이제 저자의 미국 의사 사회의 조직과 조직의 약화에 관한 언급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내부적으로 의사직은 공급과잉과 분열 그리고 노동조합인 AMA가 정부의 통제에 저항하는 데 실패하여 약화되어 왔다. 그러나 의사직의 자율에 대한 가장 큰 타격은 외부 요인에 있는데, ▲정부의 규제 ▲관리의료 체계 ▲의료산업의 기업화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의 변화 등 4가지 원인에 기인하는 대항권력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사 조직, 특히 의사협회는 점점 위기의 국면으로 접근해가고 있다. 2000년 투쟁 이후 회원들의 분열, 회원들의 급격한 수입 감소와 경영난, 회비 납부율의 지속적인 하강, 정부의 의료비에 대한 불합리하고 과도한 억제 등이 원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더 큰 요인이 있다. 우리 조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낡았고, 비효율적이다. 조직의 실패는 회무운영의 실패로 이어지고, 이것이 확대·증폭 재생산되면서 변화에 즉시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쇠락하거나 멸종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이제 몇 가지 원론적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모든 의사들은 부단히 의학과 의술의 수준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졸업 후 교육'의 기회에 적극 동참함은 물론 윤리의식의 강화로 비윤리적 진료를 금하고 비윤리적 진료를 하는 동료를 고발함으로써 스스로 최고 의료전문가 집단으로서의 품위와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각급 의사조직의 혁신과 조직 강화를 서둘러야한다. 여기에 회장을 비롯한 직무 담당자들의 솔선수범과 예산 집행의 효율성과 투명성의 담보가 전제된다.

셋째, 이제는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한 예리한 통찰력, 유연한 사고방식, 정확한 상황 판단과 민주적이고 빠른 의사결정 능력, 탄탄한 실무적 지식으로 무장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넷째, 의사들 중에 인재를 선발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로 육성하고, 이들 중에 지도자로 발굴되고 육성되어야  한다.

다섯째, 의협이 의사면허의 교부와 관리 및 회원 징계의 권한을 확보하여 스스로의 위상을 강화하고 회원관리와 회원들의 권익보호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의료계 이외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를 지지 지원해 줄 수 있는 세력의 외연을 넓혀가면서 지속적으로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들어 간호사들은 간호사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 물리치료기사들은 단독개업이 허용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미 한의사들은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면허 범위를 넘어 검사기기와 치료장비를 사용해 왔다. 또한 약사들은 의약분업 이전부터 소위 '약료'라는 이름으로 합법을 가장한 불법 무면허 진료행위를 하겠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

제12장 '간호사, 의사 조수, 약사, 조산사'에서는 이들의 역할과 행태에 관해 설명이 나온다. 의사주변 직능 인력들은 자기네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이익 창출의 기회를 증대시키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저들의 행동의 결과로 의사의 권한과 이익의 침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의학에 관한 통합적인 전문지식이 없이 독립적이고 불법적으로 시술하는 데서 오는 국민건강의 위해 및 손상의 잠재적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4장부터 16장까지는 의료비 상승 억제, 의료서비스의 형평성과 배분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에 따라 국민들의 건강관심도가 증가되고 가구별 또 국가 전체 의료비 증가 상승폭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국가재정에서 의료 및 복지후생 부문의 비율과 규모가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출산율의 저하와 인구고령화가 가속될수록 경제인구 1인당 복지와 노인부양에 드는 비용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 기업, 근로자 모두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양질의 의료를 받겠다는 욕구도 증대될 것이다. 반면에 의료비는 날이 갈수록 통제될 것이며, 의료수가 및 의료보험료의 인상도 더욱 억제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생존과 권익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세밀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데까지 시야를 확대하고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매우 유익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더 정직하게 성찰하고 우리의 현실과 장래 문제들에 관해 깊이 폭넓게 살피고 생각해 보도록 하는데 있다. 이 가을에 모든 의사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좋은 책을 번역해 주신 박호진·김경수·안용항·이윤수 네 분 역자 선생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깊이 감사한다. 아울러 <의료윤리학>, <의료사회학>에 이어 메디컬 라이브러리에서 계속 좋은 책을 출간하여 의료계의 발전과 이 나라 의료환경이 건강해 지는데 크게 기여할 것을 믿으며 다음에 출간될 책들에 더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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