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시론 우리는 첨병이었고 투사였다
시론 우리는 첨병이었고 투사였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11.25 12:0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홍승원 (전 대전시의사회장)

2005년 11월 16일 산야엔 어느새 한여름의 푸르름은 간곳없고 색깔바랜 낙엽과 찢겨진 단풍잎만 바람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날은 또한 금년 가을 들어 최저 기온을 기록한 날이기도 했다. 아침 7시 방송에는 국정원 도청사건에 의약분업도 포함되었다고 보도되고 있었다.

피고 홍승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레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200만원을 선고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424법정에서 여 재판장의주민번호확인 및 지난 재판기록의 간단한 부연 설명 후 평범한 목소리로 내린 선고였다. 지난달 300만원에서 100만원 내린 금액이었다.

물론 본인을 제외한 동료 의사들에게도 같은 형량을 선고하였다.2002년 서울 지방검찰청에서 14시간 대전 지방검찰청에서 10시간 동안강도 높은 피의자 조사를 받은 후 5년만의 결론이었다.

길고 길었던 지난날들의 상념들이 한순간 정리되면서 팔만동료 의사들의 느낌과 표정들을 상상해 보았다.

죄값을 치렀다고 평가할까 아니면 좌절의 분노를 다시 한번 표출할까, 모든 영상들이 엇갈리며 떠올려졌다.

일백년 우리 의료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록될 사건임에도 그 자리에 있는 우리들은 모두 무덤덤한 그 상태였다.

팔만여 의사회원들 중에서 완전히 분리된 한줌의 패거리처럼 느껴졌다. 많은 회원들과 함께 고난을 겪었지만 집행부 몇 명을 제외하고 민초라 자처하던 그 사람들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환자들을 보느라고 못 왔겠지' 생각하니 모두들 도서관가서 공부하는데 나홀로 등산 온 기분이었다.

1999년 오월 고 류성회 회장과 당시 의무이사였던 김종근 현 개원협의회회장의 의약분업 분업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이후 삼년동안의 휘몰아쳤던 우리 의료계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한 마디로 정리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코 열지 말아야 판도라의 상자를 열은 것이요, 헤질대로 헤진 손댈수 없는 암세포들을 건드린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부나 우리도 정확한 방향은 결정하지 못한 채 정치적 논리와 억눌렸던 의권을 투쟁적 기회의 논리로서 충돌시켰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99년 12월 말 장충체육관에서의 의약분업 설명회는 류성희집행부를 퇴진시키고 새로운 의협의 체제를 출범시켰고, 곧 투쟁적 조직을 구성하여 여의도, 과천, 보라매공원, 성모병원 마리아홀, 서울 서초구청, 한강고수부지 등에서 연이는 투쟁적 집회를 통해서  강력한 의약분업 반대논리를 전개시켜왔으나 그 결론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애매한 등식으로 연연되고 있음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하는 심정이다.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마음으로 모였었다. 머리는 차가웠고 가슴을 뜨거웠다. 우리가 모였을 때는 어느 것도 불가능이 없는 것처럼 생각했다. 모든 직역과 학연과 세대를 초월했다. 우리의 자존심은 과거 내연하기만 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치솟기만 했다.

정부도 사회도 우리도 놀랬다. 우리는 의료계 백년(대계)를 위한 첨병이었고 투사였다. 순수한 정의감으로 뭉쳐 국민을 위한 국민에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마도 세계 의료계 투쟁사에서 우리들만큼 조직적이고 논리적이며 지적인 투쟁이 있었을까?  수 백 대의 차량과 수 천 개의 막장과 수 만 명의 의사들이 모여 잘못 시행되려는 정부 정책을 성토하고 국민을 위한 의권수호 함성은 한 폭의 역동적인 그림이 아니었던가.

영광스럽게 영원히 명품처럼 보전하여야 할 풍경화가 아니었나. 라덴스키 행진곡이 들려오는 이 그림을 우리는 진귀한 보물처럼 간직해야 하는데….

그러나 오년이 지난 지금 그 그림을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회원들은 얼마쯤이나 될까.

어느 사이 삼류 극장가 벽에 붙어 있는 찢겨진 선전물처럼 퇴색되고 이 늦가을에 밟히는 낙엽 같은 신세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우울할 뿐이다.

의협 집행부와 의쟁투는 수레바퀴처럼 보완하며 조화롭게 굴러가야 했음에도 본래의 기능에서 삐걱거리며 똑바로 가지 못했음을 어찌 부정 할 것인가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합심하며 투쟁했었어야 할 때 막판에 꽁지 내림은 그 또한 무엇이었던가.

웬놈의 율사가, 논객이 그리 많은지, 무슨 아이디어가 폭주하는지, 정리되고 소화하지 못했던 방만한 조직과 투쟁은 오히려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겁게 변화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지역 간의 생각과 직역간의 괴리 또한 노골화 되었고 세대 간의 의견 또한 엇갈려 갔다.

강성이 무슨 장점인양 무책임하게 목청을 높였던 논리도 없이 딴죽을 걸었던 일부 회원들의 자세도 이제는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도청에 의하여 발가벗겨진 채로 싸움에 나섰던 우리들, 순진하게 우리들의, 우리들에 의한, 우리들을 위한, 투쟁으로 오도되어 국민의 편이 아닌, 제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폄하되어 궁지에 빠뜨렸던 정책자, 국회의원, 시민단체들은 두고두고 정신 나는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다.

오년이 지나면서 우리를 옥죄는 법들은 강화되고 감시는 심화되는데 이제 우리는 의식마저 쇠잔해져가고 있다.

도대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명을 다루는 과는 점점 시들해지고 의료수가는 뒷다리 잡고 싸움에 앞장섰던 주장은 사법처리 벌금 맞고 잔뇌를 굴려야 살 수 있는 현실을 누가 잔다르크처럼 되어 구해줄까 그저 운명론에 맡겨 미래를 맞이해야 되는가 속이 답답할 뿐이다.

이제 금년 한해가 벌써 막장이 되었다. 새로운 집행부를 이끌어 가겠다고 벌써 여기저기서 하마평이 들려온다. 제발 사심 없고 희생정신으로 앞장설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그래서 잘했건 못했건 전과자가 되어버린 2000년 투쟁에 앞장섰던 피고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잊혀지기만 한다면 후에 누가 또 돌짐을 질 것인가 어쨋건 의료계 역사 한 페이지의 주인공들이다.

흩어져 버리는 낙엽처럼 되지 않고 새로운 싹을 틔울 밑거름으로 인정 해주길 바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