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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줄기세포 파동의 교훈

시론 줄기세포 파동의 교훈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12.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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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전 세계의사회장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이 온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과학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한편, 국내 과학계의 검증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 피츠버그 대학교·사이언스지 등 국내외적으로 검증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는다.

이 기회에 정부·사회·국민 모두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몇 달 전부터 의학계의 몇몇 교수들로부터 황 교수의 논문에 대한 우려의 소리를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로서는 논문 검증에 관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논문에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규탄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일을 미리 막고 조용히 진실을 찾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이유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비롯, 정부나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는 선진국에서도 대단히 어려운 과제로, 아직까지 성과가 미진하고 상당한 시일과 투자가 계속돼야 하는 분야다. 황 교수와 같은 유능한 과학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여러 번의 검증절차가 필요한 등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공개적인 토론도 없이 황 교수를 하루 아침에 영웅으로 만들고 신성 불가침한 위치에 올려 놓고 말았다. 또 이 연구를 국가적·국민적 프로젝트로 만들고 거의 무제한의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단순히 과기부나 복지부 수준에서뿐 아니라 여러 기관이 복잡하게 개입하면서 부작용 역시 증폭됐다.

정치권에서도 잘못이 없지 않았다. 황 교수의 연구는 인간복제에까지 이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과학정책의 방향에 대해 국민적인 논의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여론에 부화뇌동했다.

종교계도 마찬가지다.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무기한의 단식투쟁까지 했던 종교 지도자들이 줄기세포나 인간복제에 관한 연구에서는 분명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는 신중론을 표시한 바 있지만 이 역시 미미했다.선진국에서는 종교계가 줄기세포와 관련한 연구에 대해 신중론을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사회분위기도 문제다.조급한 사회분위기는 산업발전과 같은 분야에서는 효율적일지 모르나 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부분적으로는 세계수준에 도달한 점도 없지 않지만 종합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과학기술이 특히 연구 분야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줄기세포 연구만 특출나게 단시간 내에 성과를 얻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과학 연구는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부담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도 문제였다.상반된 의견도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어야 하는데도 국내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문제는 공개적인 논의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였다.MBC의 'PD수첩'이 문제를 제기하자 'PD 수첩'에 대한 사회적인 반론이 심각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취재상의 윤리적인 하자에 관해서는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연구 자체에 대한 의문제기는 당연히 수용됐어야 했다. 대중의 구미에 맞지 않는 반론을 일방적으로 규탄하는 분위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의사협회 회장 재직시 과학원으로부터 장기이식술의 문제점에 관한 세미나에 초청받은 바 있다.국내 과학계의 저명한 원로들과 신진 현역 교수들이 참가해 당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던 장기이식을 비롯한 선진첨단의과학의 연구가 무제한 허용돼야 하는지, 연구결과에서 발생할 위험성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논의의 초점이었다.

필자는 의과학 연구는 제한없이 허용돼야 하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인간에 적용하는 데는 어느정도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동물의 복제기술이 개발되고 인간복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그때의 주장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배아복제에서 시작된 인간복제는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만큼 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지속돼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과제는 정부나 민간의 막대한 재정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에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특히 논문 허위조작의 진위조사는 민간에게 맡기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황 교수가 진실규명에 검찰의 개입을 요청한 것은 조급한 처사이며, 과학자로서의 올바른 태도도 아니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지만 앞으로 국내 과학계에서 발표되는 여러 논문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에 큰 하자가 발생하였다는 점은 계속 우리들에게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리의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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