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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보험수가 이대로는 안된다

시론 보험수가 이대로는 안된다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6.01.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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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형 경기도립의료원장

의료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2006년도 건강보험수가가 3.5% 인상됐지만 병원의 경영적자는 여전히 면하기 어렵다.

2006년도 수가조정은 수가계약제 시행 후 최초로 계약에 의해 정해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나, 막상 수가조정 폭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계가 공동으로 연구한 연구결과가 반영되지 않고 절충에 의해 정해짐으로써 의료계의 낙담도 적지 않다.

많은 돈을 들여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험수가를 정할 때도 항상 연구결과는 제시됐으나 그 연구결과를 활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험수가를 올리려는 의료계와 보험수가를 동결하거나 인하하고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려는 가입자단체의 의견에 편승한, 즉 여론의 수용지수 선에서 정하려는 정부와 공익대표들이 그야말로 '감'(感)으로 정했을 뿐이다.

이렇다보니 앞으로는 비용만 낭비하는 연구보다 어쩌면 의료공급자와 소비자의 균형잡힌 '감'으로만 협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동안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공통적인 사항은 보험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분석한 '원가수지분석'은 거의 100% 이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험환자만 진료해서는 경비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수가가 원가에 미달한다는 것은 병원경영을 해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필자가 경영하는 경기도립의료원의 6개 병원 중 비교적 경영상태가 양호한 병원을 예로 들면 150병상의 병상 이용률이 95% 이상이고 1일 외래 환자수가 500명 정도로 다른 중소병원과 비슷하거나 더 많으며 직원수는 173명으로 전체 중소병원의 평균 정도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은 의료수입 8억에 의료지출 9억원으로 1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가이외에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수가가 낮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가격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치와 상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료비의 경우는 상식을 벗어나게 저렴하게 책정돼 있다. 수 년 전에는 아시안월스트리트 저널에 '한국의 값싼 의료'라는 제목으로 의료비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내용의 가격을 비교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 2004년 의료수가에 의한 가격과 다른 물가를 비교한 보고서에 의하면 방문 당 수가(공단부담금+ 본인부담금)가 고혈압 1만1469원·급성편도선염 1만781원·십이지장염 1만5422원 인데 비해 빅맥셋트 2개 9600원·냉면 2인분 1만1000원·탕수육 1접시 1만3000원·피자 1판 1만7000원·애견 미용료 2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의료수가 중 실제 본인이 내는 본인부담금은 4000원 정도밖에 안되는 것을 고려하면 가벼운 점심식사 비용에 불과하다. 이러한 가격 때문에 외래방문건수가 높으며, 의사 장보기(doctor-shopping)현상이 발생해 의료이용에 대한 심각성을 찾기 힘든 형편이다.

한편 의료서비스를 지원해주는 의료용 재료도 가격 통제로 몸살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수액제제의 가격이 낮아 생산을 기피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며 일회용 주사기 10개가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 주사기 1개 값에 해당한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이는 주사기와 수액셋트가 처치료에 포함돼 생산원가 39.2원에 못 미치는 34.4원에 납품하고 있어 1개 팔 때마다 4.8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식약청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수액셋트 등 재료비를 처치료에서 제외해 별도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낮은 수가는 대부분이 의료인의 인건비에 전가돼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대졸 초임직원의 평균임금이 2767만원으로 발표(오픈 셀러리)되고 있으며, 특히 은행·보험사·정유사·KTF 등은 3000만원 이상인 반면에 병원의 간호사는 3교대로 인한 야간·휴일근무수당에다가 연장근무 수당까지 합쳐 2000만원 정도이다.

더구나 의료기사·병원사무직은 각종 수당이 없어 이에 못 미치니 직업 중에 중하위권 밖에 안된다. 의사는 어느 정도 보수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나마 급격히 떨어지고 있으며 일부 과의 경우 벌써 기업의 봉급생활자 수준으로 됐고 다른 과도 하락폭이 높아 전문직 중에서 12위가 조만간 최하위로 전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비급여가 많은 치과의사와 한의사는 5위안에 들고 있으며, 최근 파업으로 사회의 이목을 끈 항공기 조종사도 5위안에 있다.

낮은 가격으로 인한 낮은 수입은 학문발전도 저해해 보험진료를 주로 하는 외과·소아과 등은 우수인력들이 기피한지 오래됐고 전공의도 기피하며 극심한 인력난에 처해 있으므로 관련 임상학문도 정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의료 산업화의 의제로 의료클러스터·생명과학 등 거창한 과제를 선정하고 있어 대부분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고 있다.

의료산업화의 사례로 싱가포르 등을 벤치마킹한다고 하나 국내 산업의 발전없이 인천특구·제주특구에 외국 병원을 끌어드린다고 의료산업화가 될 리가 없다.

이는 현대자동차 등 국내회사는 가격을 통제해 규제하고, 외국자동차회사를 끌어들여 가격을 자율화 해주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의료산업화위원회에서는 우리나라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다면 적정부담-적정수가방안을 현실화하는 등 당면한 현안부터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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