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록(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정부는 2001년 7월 연이은 실험적 정책 실패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시 의료계와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진찰료·처방료 통합, 차등수가제 실시, 야간가산 시간대 축소, 급여 기준 및 진료비 심사 강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건강보험재정안정화대책을 시행했다.
오직 건강보험 재정절감에만 중점을 둔 재정안정화대책 때문에 의료계는 그동안 의사로서의 기본적 권리인 진료권 침해와 연간 1조원이 넘는 경영손실을, 국민들은 황폐화된 의료환경으로 인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수급권과 선택권 제한 등의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 왔다.
특히 실생활 주기에 부합토록 한다는 명목으로 포장한 야간가산 시간대 축소는 근로기준법에 의한 일일 8시간 근무대상자에서 의료계 종사자만 제외시키는 모순을 발생시켰으며, 야간진료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의료기관의 야간시간대 진료 기피현상을 초래해 몸이 불편한 직장근로자에 대한 의료접근성을 저해하고 응급실로의 경증환자 집중을 유발시켜 오히려 국민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말았다.
2001년 한국소비자보호원은 '병원응급실 이용실태 조사결과'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의 야간·휴일진료가 활성화되지 못해 비응급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진정한 응급환자에게 제 때에 적절한 응급 치료를 제공하지 못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 2004년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 수가체계 개선방안 연구'에서는 비응급환자가 응급실 진료를 받았을 때 환자의 전액 부담으로 돼있는 '응급의료관리료'가 환자와 의료기관간의 마찰과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과함께 응급실 이외에 휴일이나 야간에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이 많아져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2005~2010년 응급의료기본계획(2005.6.)에서 밝혀진 '응급실 부적절 이용의 75%가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이라는 사실은 응급의료체계의 왜곡과 경증환자에 대한 게이트 키퍼(Gate Keeper)로서의 의원급 의료기관 공백의 문제점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경증환자의 응급실 집중에 따른 야간진료체계의 왜곡과 불필요한 보건의료비의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야간진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일부에서는 야간가산 시간대 환원에 따른 건강보험재정 지출의 증가를 우려하기도 하지만 이는 야간가산 시간대 축소로 인한 비용절감의 효과보다 환원에 의해 얻게 되는 이득이 국민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견이다.
최근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너무 양적인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비급여 행위를 급여로 전환함으로써 급여 항목 수만 늘리는 것이 마치 보장성 강화의 전부인 것으로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다.
급여대상 범위 확대 외에, 제공되는 의료행위의 질을 높여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보장성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진료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미명 하에 질적으로 형편 없는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거나 몇 달씩 기다린 후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면 "보장성이 높다"라는 논리는 결코 성립할 수 없다.
급여항목 수만 늘리는 양적·외형적 보장성 확대 보다 의료서비스의 질적·내용적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료와 건강보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12월 2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 정부가 2001년 7월부터 일방적으로 시행했던 건강보험재정안정화대책 중 하나인 진찰료 야간가산 시간대를 평일 오후 6시(토요일 오후 1시) 이후로 환원키로 결정했다.
이상에서 지적했듯이 직장인들의 진료 편의성 제공과 응급실 진료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야간가산 시간대 환원 결정은 시간적으로 늦었으나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물론 야간가산 시간대 환원만으로 야간진료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야간진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야간진료에 따른 의사의 업무량과 간호사 등 보조 인력의 연장근로에 따른 추가적 비용 증가를 반영할 수 있는 수가 현실화가 전제돼야 한다.
특히 2004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5일 근무제의 확대와 이에 따른 의료이용 시간대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진찰료 야간 가산 시간대는 오후 6시 이후의 '야간가산'과 밤 10시 이후의 '심야가산'으로 구분해 조정해야 하고,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됨에 따라 사실상 공휴일 개념에 포함되는 토요일 진료에 대해서 '공휴가산'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야간진료체계의 확립과 야간진료의 활성화를 위해 오후 6시 이후의 시간외 가산(약 8500원, 초진료의 약 31%) 외에 심야시간(22:00~06:00)을 별도로 구분해 추가 가산(약 48,000원, 초진료의 약1.75배)을 인정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끝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내실 있는 건강보험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차등수가제 폐지 및 진찰료 산정기준 개선, 의료행위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불합리한 고시와 심사기준의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두서 없는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