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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시론 의사의 무과실 입증 책임과 관련하여
시론 의사의 무과실 입증 책임과 관련하여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6.02.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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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 (서울 마포구 온산부인과의원)

최근에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이 의료 사고 예방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고 한다. 사실 의사들로 하여금 원칙에 따른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을 조정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주장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진단 부분이든 치료 부분이든 의료행위에는  항상 오진과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있고 그런 경우 환자와 의료진 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과연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고 누가 손실을 배상할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 사회 모두가 인정하는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행위를 한 당사자인 의사가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의사가 전적으로 배상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수혜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위험을 동반한 행위를 요구한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고 그렇지 못하면 손실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의료에 관하여는 사회주의 체제를 택한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의사나 환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이해 집단 간의 상이한 주장을 보면서 어떤 것이 완벽한 해결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 나름대로의 타당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상호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어떤 쪽의 선택이 향후 다수 대중에게 득이 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우선 이번 법안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담당 의사가 무과실을 입증할 책임을 지고 입증치 못할 의사 개인이 손실을 배상해 주자고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의료 행위는 인간의 신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기계에 적용되는 것과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료 분쟁이 발생한 많은 사례에서 그 분야에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안을 검토하더라도 과연 담당 의사에게 잘못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아주 많다.

물론 환자들 입장에서 의료진의 과오를 찾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비전문가인 환자들이 의료 과실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전문가인 의료진이 무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일견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점에서 환자들도 얼마든지 다른 의료진의 도움과 자문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모든 결과 중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많은 사례들이 의사만의 책임으로 남게 되면 당장 환자들의 입장에서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다소 더 수월할지 모르지만 점차 그런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를 하려는 의사는 점점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선 그런 분쟁에 따르는 위험 부담 비용이 진료비용에 전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아 경제적인 점에서 부담이 굉장히 클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해당 의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의료분쟁이 의료진의 책임을 묻는 쪽으로 점차 진행된다면 장래에는 조금이라도 위험을 동반한 의료행위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로봇들이나 담당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험성을 동반하는 행위일수록 로봇과 같은 단순한 기계가 대신할 수 없으며 장기간의 교육과 철저한 훈련을 마친 전문가만이 내릴 수 있는 매우 복잡한 판단과 오랜 기간의 숙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환자가 모든 것을 입증하고 책임을 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런 점은 앞으로 연구를 해 보아야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의료분쟁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의료 전문팀으로 하여금 과실을 판단케 하고 배상은 국가가 책임을 지는 방식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한 가지 사례는 점점 늘어나는 의료 분쟁에 관하여 우리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1950 년대에 심장 수술을 전문으로 하던 윌턴 릴리하이라는 의사는 심장 수술시 사용하던 저체온법의 문제를 개선하여 좀 더 많은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심장병을 가진 아이와 그 부모의 혈관을 연결하여 심장 수술을 10 분 이상 연장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술 중에 연결된 플라스틱 관을 통하여 공기 방울이 부모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치명적인 심장 마비를 일으켜 부모와 아이 모두 사망하였다. 담당 의사는 "나는 사망률 200%라는 수술법을 발명한 의사로 역사에 오명이 남을 것이다"라고 회고했지만 결국 그의 시도 덕분에 그 뒤 심폐순환기가 개발되고 과거라면 죽을 수밖에 없던 심각한 심장 이상을 가진 아이도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의료 분쟁이 심각하게 늘어나고 의사에게 잘못을 묻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아마 더 이상 그런 위험한 수술을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은 없을 것이다.

의료 분쟁에서 책임을 따지는 데 있어서 가장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요점은 결국 전문가인 의사만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다른 대체 인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다른 대체 인력이 있는 상황이라면 입증되지 않은 모든 의료 분쟁에서 의사들의 잘못을 철저하게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 외에 인간의 질병을 책임질 사람들이 없는 현실에서는 좀 더 그들에게 신뢰와 재량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판사들의 판결이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판사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질병을 고치고자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의 의지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의지다.

의사들의 진료가 미덥지 못하고 나쁜 결과에는 반드시 잘못된 판단이나 불충분한 실력 혹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세가 배경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가 보편화된다면 아마 앞으로는 모든 국민들이 십 수 년간의 의과 대학 교육과 수련 과정을 받아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은 자신이 지키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처럼 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오직 퇴보와 비참한 결과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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