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희망을 심는 의사 & 신부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는 의사 & 신부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6.02.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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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수단의 이태석 신부

같은 나라 사람끼리 무려 20년 동안 총질을 해 대며 사는 나라, 수단.

오랜 내전으로 헐벗고, 굶주린 채 인성마저 잃어버린 비극의 땅 수단에서 묵묵히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한국인 이태석(44세) 신부가 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신부이기에 앞서 인제의대를 졸업한 의사이기도 하다. 수단 남부지역인 톤즈에 진흙과 모래로 진료소를 세우고, 죽을 날 만을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그의 몫이다. 이와 함께 청소년 교육을 통해 수단의 암울한 현실에 희망의 빛을 던지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인터넷은 물론이려니와 전기조차 생소할 정도로 문명과는 담을 쌓고 있는 톤즈에서 이태석 회원이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45도의 기온은 예사이고, 50도까지 오르내린다는 수단에서 엊그제 도착했다는 이 신부는 "온도 차이가 너무 커서 걱정했는데 견딜만 하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톤즈지역 청소년교육 후원 문제와 인제인성대상 특별상 수상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렀다는 이 신부는 "수단에는 2주만에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다"며 아이들 자랑부터 늘어놨다.

 

이태석 신부, 수단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 의대졸업 후 로마서 신부수업

1987년 인제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하기 전까지 그는 여느 동기생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의사의 길을 걷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유아 세례를 받고, 복사(가톨릭에서 미사를 주관하는 사제의 심부름꾼)를 했어요. 가톨릭 가풍 속에서 자랐기에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숨가빴던 의대와 인턴생활을 마치고 육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성직자의 꿈이 불현 듯 밀려들었다.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어머니께서 혼자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였습니다. 4남 6녀 가운데 한 명은 신부이고, 한 명이 수녀였는데 저마저 신부가 되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많이 서운해 하셨어요. 하지만 '네가 원하는 길이라면 가야하지 않겠냐'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은 그는 1991년 군 복무를 마친 후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에 입회, 뒤늦게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신부가 되기 위한 길 또한 멀고 험난했다.로마 살레시오 신학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이 신부는 운명적으로 아프리카 수단과 만난다.

"한창 신부수업을 받던 1999년 여름방학 때 봉사를 하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에 간 적이 있습니다."

무작정 찾아간 아프리카 케냐에서 이 신부는 오랜 내전으로 수백 만 명이 죽어갔다는 남수단의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접했다. 200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부는 봉사자들 조차 꺼려하는 아프리카 중의 아프리카를 찾아 나서기 위해 수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병에 걸려야 행복한 사람들

톤즈지역은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파종할 씨앗마저 식량으로 써 버린 탓에 굶주림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오랜 내전과 가난에 찌들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감사하다', '고맙다'는 단어를 잃어버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신부와 수녀 개념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신부는 처음 톤즈에 도착했을 때의 기막힌 기억을 털어놨다.

"딸의 손을 잡고 꼬박 며칠씩 걸어서 진료소에 온 한 아주머니가 '한센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아들고 너무나 슬퍼하면서 되돌아가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딸이 한센병에 걸려야 다만 얼마 동안이라도 입원을 해서 식량과 약을 받을 수 있을텐데 아니라고 하니 희망을 안고 며칠씩 걸어온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모녀에게 조금의 식량을 쥐어주던 이 신부는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케냐라고 하면 후진국 아프리카 중 하나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이곳 톤즈 사람들은 케냐를 지상낙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열악하다'는 의미가 부끄러울 정도로 빈곤한 톤즈에서 이 신부는 어김없이 수요 진료소를 열고 있으며, 인근 지역을 순회하며 출장진료 활동도 벌이고 있다.

"저는 이곳에서 매일 작은 희망과 만납니다. 조금의 약과 주사로 뼈가 앙상한 아이들의 볼과 엉덩이에 살이 오르고, 죽어가던 아이가 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을 봅니다."

 

▲ 청소년 교육 통해 희망의 빛 던져

이 신부는 최근 톤즈지역 청소년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음악교육을 통한 정서순화와 희망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음악에 각별한 재질이 있습니다. 3일 만에 오르간과 피리를 연주하고, 기타를 가르치면 저도 놀랄 정도로 놀라운 연주솜씨를 선보이곤 합니다."

이 신부가 지도하고 있는 브라스밴드는 창단 넉 달 만에 교구 창설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돼 공식 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기막힌 연주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신부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대학 동기를 비롯해 한국의 고마운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 이태석 신부 후원 이렇게?

후원 문의 수단어린이장학회(www.frjohnlee.org, 02-591-6210∼1, sudan-ed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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