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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시론 실사구시 정신으로
시론 실사구시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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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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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구일 원장(경기 파주·연세미래이비인후과)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인 실사구시(實事求是)는 후한서에 나오는 말로 공리공론을 배격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과학적 자세로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말한다.

갑자기 웬 실사구시 인가 하지만 실용적 사고로 목표를 정할 때 그 갈 길이 보인다는 뜻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러면 한국의료의 목표는 무엇인가. 국민건강의 향상이 그 목표이다.

그 목표를 향한 여러 갈림길에 사회주의 의료, 의료산업화 등등의 이념적 논쟁들과 그와 관련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는 후대가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나 어려운 의료 환경과 격변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의료제도도 변해야 하기에 올해 들어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주장중 가장 옳게 보이는 길로 가야 함이 맞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길이 옳은 길인가는 실사구시적인 시각으로 다시 한번 살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획예산처에서 들고 나오는 건강보험료 기금화 논란은 이렇게 한번 해석해 보면 어떨까? 의료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는 당연한 가정아래 환자와 의사간에 개입하는 개체가 많을수록 비용은 증가한다는 실용적인 사고로 해석하자면 공급자, 환자, 보험자 외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면 결국은 비용이 더 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가가 의료비용을 줄여보자는 공리에서 출발한 기금화 논란이지만 결국에는 비용이 더 들고 나중에는 공급자나 보험자, 환자를 통제할 것은 명백하겠다. 물론 국가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려고 후불제나 포괄수가제 등의 정책수단을 사용하면 목표는 달성할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비용을 줄인 의료는 그 의료의 질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실제적 진실은 의료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의 질 관리의 실패는 결국 그 책임이 의사에게 돌아올 공산이 크다. 의사입장에선  별로 좋은 길이 아니라 보인다.

의약분업은 어떤가. 환자의 알권리라는 공리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환자와 의사간에 약사라는 직군이 개입함으로써 5조원이상의 비용이 더 든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비용은 더 들었지만 좋아진 것은 무엇인가? 환자의 알권리가 과연 좋아졌는가.  일본이 임의분업으로 환자의 알권리가 침해당했단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명분 없는 싸움에 애꿎은 국민들의 보험료만 축나는 꼴이다.

알 권리로 출발한 문제는 항생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마 의약분업 재평가 시에 가시적 성과는 얻기 어려우니 괜한 항생제 관련한 병원 공개로 항생제 사용량을 줄여보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환자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면 약국의 조제내역서 발행이 가장 현실적임은 누구나 알지만 누가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일차의료 주치의 제도도 공리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미 일차의료 주치의를 하는 나라와는 현실적인 구조가 많이 틀리다. 우리나라는 단과 전문의가 이미 전체 의사중 80%를 넘고 있다. 현재는 동네에서 일차진료의를 거치지 않고 편하게 단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데 만약 문지기 형태의 일차진료의를 강제적으로 거치게 한다면 오히려 한 단계를 더 거치니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비용만 더 드는 것이 아니라 단과전문의가 보면 쉽게 진단받고 쉽고 빠르게 고칠 수 있는 병도 시간을 끌게 되니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이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은 계산하기도 어렵다. 또한 현재보다 환자의 접근도를 제한하게 되므로 국민들의 불만도 살 일이 당연하다. 이런 일은 일차진료의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결국은 고생은 고생대로 비용은 비용대로 드니 실용적 시각에서 보면 일차진료의는 20년 후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질 높은 의료를 구현하자는 논의는 어떤가. 뜻은 훌륭하지만 동기유발과 목적이 명확치 않으며 이를 실현하자면 현재보다 4배 이상의 보험료를 더 걷어야 가능하니 과연 국민이 합의해 주겠는가. 또 모든 국민이 최고의 의료를 받기는 더 어렵다. 왜냐면 항상 최신 기술은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시술이 확산되면서 가격이 내려가겠지만 그 시간적 갭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동 시간대에 싼 가격으로 최신의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항상 이상적이다. 그것을 인정하면 실용적이요, 인정치 못하면 공상적이다. 문제는 항상 공상을 좇는데서 출발한다. 잘못된 출발은 목표점에 다다를 수 없기 마련이다.

이제는 한국적 현실에 맞는 의료정책을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되짚어 나가야 할 때이다.

모든 주장과 정책은 현실적 기초에 근거해 과학적, 합리적 사고로 분석, 판단해 현실적인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현실성 없는 주장과 그것에 억지로 꿰맞추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잘못하면 한국의료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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