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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위한 봉사자 되는게 꿈"
"인류를 위한 봉사자 되는게 꿈"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6.03.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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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 곽병은 원장

 제22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곽병은 원장(원주 부부의원)은 어린시절부터 인류를 위한 봉사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뒤로는 의과대학시절부터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곽 원장은 현역에서 은퇴할 때 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1989년 원주시에서 개원을 한뒤 2년도 채 되지 않아 장애인 및 독거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시기가 조금 당겨졌을 뿐"이라고 대답하는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낮 12시에 무료급식소인 '십시일반'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숙자들을 위해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지역사회 이웃들과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봉사다"고 강조했다.

 

맨손으로 일궈낸 '갈거리사랑촌'

곽 원장은 무에서 유를 만들 듯, 뜻과 용기만 갖고 맨손으로 강원도 원주군 흥업면 대안리(시군통합 이전) 작은 마을에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했다. 빚을 내서 부지를 매입하고 설립한 갈거리사랑촌은 8월에 비인가 민간복지시설로 출발했다.

곽 원장은 갈거리사랑촌 설립 이후 독거노인·장애인·노숙인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1997년 '십시일반'도 설립했다. 매일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인원이 100여명이나 된다. 이밖에도 '원주노숙자쉼터·'봉산동할머니의집'·'갈거리협동조합'·'갈거리장학회' 등을 연이어 설립하면서 독거노인·장애인·노숙인들에게 생활보호사업은 물론 노숙인보호사업, 주거지원사업 등을 하고 있다.

 

15년치 월급 통째로 쏟아부었다 

 그러나 봉사활동이 확대되면서 그만큼 재정적인 부담도 커졌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원주교도소 의무과장을 겸직하면서 받는 월급을 몽땅 쏟아붇기로 했다.

"처음에는 돈이 부족하던 때라 운영비를 무엇으로 충당할 지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1991년 원주교도소 의무과장을 겸직하면서 받은 월금을 부인과 상의끝에 모두 갈거리사랑촌에 쓰기로 했죠"

그러나 이 마저도 못하게 됐다. 올해 1월부터 겸직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주교도소 의무과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곽 원장을 어렵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처음 갈거리 사랑촌을 설립했을 때 시에서 불법단체라며 봉사활동을 못하게 했다.

"원주시와 원주군이 통합되기 이전에 소쩍새 마을이라고 있었는데, 지역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복지시설을 만들지 못하게 했죠". "또 시에서는 복지시설 규모가 커지면 재정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곽 원장은 기를 쓰고 보사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끝내 정식단체로 인정을 받았다.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곽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인류를 위한 봉사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이유로 의과대학을 선택했고, 각종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수련을 받을 때는 안양에 있는 '성나자로마을'(나병환자 정착촌)에서, 원주서 군생활을 할 때에는 '사랑의 집'(양로원)을 주말마다 방문하면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곽 원장이 봉사를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 80년대 초 서울소년감별소 의무과장이셨던 아버지를 대신해 서울소년감별소로 2~3년 진료를 다닌 경험이 있는데, 이것이 원주교도소 의무과장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고, 이는 갈거리사랑촌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고 한 원동력이 됐다.

"아버지가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죠.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지난해 돌아가셔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사회에 '빛과 소금' 되고파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전문적인 진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때 주위에 있는 의사들이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곽 원장은 "그러나 원주시에는 의사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체가 없어 아쉬워요. 그래서 조만간 의료인이 중심이 된 봉사단체도 만들 계획입니다"며 앞으로 의료봉사활동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각오다.

"의사는 사회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앨리트입니다. 지역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죠. 그러나 앨리트라는 위치에서 제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장사를 하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닙니까" 곽 원장은 적어도 장사꾼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대신 '빛과 소금'이 되고 싶단다. 자신의 능력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때 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였던 곽 원장은 학생들에게 "서로가 힘을 합치면 무한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척이나 강조했단다.

 

진정한 봉사 위해 규모 줄일 것

곽 원장은 1996년 천주교 원주교구 사회복지회에 갈거리사랑촌 부지 및 건물 일체를 헌납했다. 그 이유는 진정한 봉사를 위해서였다.

"봉사활동 범위가 커지다보니 순수한 봉사가 아니라 기업화되는 것 같아 헌납하게 됐습니다"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이었다.

곽 원장은 또 봉사활동 규모도 줄일 계획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이웃들과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신념 때문이다.

"의사로서 진료는 하되 보통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고 싶어요. 나머지 능력은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데 사용할 겁니다. 물론 부인과도 '보통 의사'로 살기로 약속했죠"

이런 이유로 곽 원장은 봉사활동 규모를 줄이는 대신 갈거리사랑촌이나 무료급식소에서 진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매일 자신을 살피면서 살 것"

곽 원장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과 약속했던 것이 있다.

첫째는 생업을 위한 의사직업과 봉사활동 이외에는 다른 직업이나 책임질 위치의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둘째는 봉사활동으로 언론에 나가지 않는 것이다. 세째는 봉사활동으로 인해 상을 받지 않는 것이고, 네째는 갈거리사랑촌 가족들과 똑 같이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네 가지 약속 중 벌써 세 가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단다.

곽 원장은 이번에 상금을 받으면 "개인 및 복지시설을 위해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의미있는 상과 상금인 만큼 심사숙고해서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곽 원장의 진료실 한 구석에는 '자성당'(自省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매일 자신을 살피면서 살겠다는 그의 의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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