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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아프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병원에 오라"
"아프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병원에 오라"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6.04.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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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마취통증의학과 이상률 원장

화요일 늦은 오후. 제 아무리 열심히 환자를 본다는 원장이라도 이쯤되면 집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 밤 9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병원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예사롭지 않다. 불빛의 근원지를 찾아 문을 열면 10여명의 개원의들이 대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유전자검사와 의료윤리'. 강사는 이상률 강서마취통증의학과의원장이다. 강의는 1시간 반 남짓 걸려 끝이 났는데, 여간해선 '학생'들의 질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2시를 훌쩍 넘기는 것도 예사다.



▶ 깨달은 이의 입은 가볍다?

대한임상유전체의학회 기획이사, 대한마취통증의학과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 등을 맡고 있는 이상률 원장은 벌써 한 달이 넘게 자신의 병원에서 매주 개원의를 위한 유전자검사 워크숍을 열고 있다. 물론 무료다. 워크숍을 거쳐간 의사들이 진료과를 불문하고 50여명은 족히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질병관련 유전정보는 20여개에 달합니다. 이제는 의사들이 질병에 걸린 사람 뿐만 아니라, 질병을 예방하는 활동에도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지난 2년여동안 300여명에게 유전자 검사를 시행했는데, 이제는 다른 의사들에게도 도대체 유전자 검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보편화된 지식검색이나, 상품평도 '좋은 것을 알면 누군가에게 자꾸만 알려주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 덕분에 성장하지 않았던가. 이 원장도 자신이 워크숍을 열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인간 본연의 욕구 때문이란다. 마침 그가 몸담고 있는 임상유전체의학회에서 비슷한 행사를 준비하던 중에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는 생각에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출발선을 넘었다.

 

▶ 유전자검사는 커닝페이퍼?

"요즘 사이비 의료행위가 얼마나 많은데요. 의사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빠져들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건강과 관련해서라면 무조건 많이 알아야 합니다."

환자를 볼 때 혈액검사 결과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진단을 추정해야 하고 치료도 화합약물에 의존해야 하지만, 정작 치료 결과가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는 현실에 염증을 느낀 그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이른다.

"'왜 이런 질병에 걸렸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유전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한의학에서 흔히 말하는 '체질이 다르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낸게 유전의학이라고 할까요? 유전의학을 제대로 알면 질병을 예방하고, 나아가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데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유전자검사는 커닝페이퍼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맞춤 옷''맞춤 가구'처럼 '맞춤의학'의 시대가 찾아왔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 건강관리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워줘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더욱이 생명윤리법에서 의료기관만이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도록 정했으니 더더욱 의사의 역할이 커진 셈이다.

 

▶ "아버지, 의술로 사람을 구원하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구세군 목사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 교회에서 나고 자랐던 그에게 있어 인생의 교과서는 '성경'이었던 셈이다. 그가 유전자검사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성장 배경에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을 때지만 말씀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던 아버님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럼 나는 무엇으로 사람을 구원할 것인가? 말주변이 없는 저는 의술로 사람의 몸을 구원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지요."

그렇게 의사가 된 그는 질병에 걸린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다고. '성경에는 분명 인간이 12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왜 현실에서는 불가능할까?' 호기심 많은 그가 찾아낸 열쇠가 바로 유전자검사였다.

그가 인생의 교과서로부터 배운 것은 그뿐 아니다. 그는 학회와 의사회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1998년 개원한 이래 매주 양로원을 찾아 진료봉사를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선한사마리아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를 한껏 치켜세우는 기자의 말에 그는 "나처럼 바쁘게 사는 의사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멋쩍게 웃는다.

 

▶ 강서구에서 서울로, 전국으로

강서구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워크숍은 당초 계획했던 대로 7차례 모임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몇 주째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의사가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아 자신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됐단다. 덕분에 이제는 강서구를 넘어서 서울로, 전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기는 벌써부터 그를 찾는 문의가 여기저기서 쇄도하고 있는 중이니까. 이제는 임상유전체의학회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어 앞으로 그의 워크숍은 전국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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