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는 능력… 남을 위해 쓰고 싶어요!"
"내가 갖고 있는 능력… 남을 위해 쓰고 싶어요!"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6.07.05 11:2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뇨기과 박석산 교수

박석산 교수는 '작은 공'으로 하는 운동이면 뭐든지 자신이 있다. 그중에서도 테니스만큼은 자타가 공인할만큼 수준급이다. 박 교수는 전주예수병원에서 골프를 처음 배웠다. 그러나 상경한 이후로는 골프를 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테니스와 인연을 맺었다. 한번 마음 먹은 것이 있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 탓에 그는 매주 코트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결과 한국의사테니스연맹을 창설하게 됐고, 의사사회에 테니스 붐을 일으켰다.

 

▶ 1992년 한국의사테니스연맹 창설

1990년대 초반에는 골프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골프장을 찾을 때 박 교수는 좋아하던 골프를 접었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테니스다.

1992년 연맹을 창설할 당시 서울에는 서울시의사테니스회가 유일했다. 하지만 활발한 활동이 없어 명맥만 유지될 뿐이었다.

이때다 싶어 테니스 활성화 차원에서 전국단위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국을 누비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결국 1992년 한국의사테니스연맹을 창설했다. 또 매년 개인전·단체전 등의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다보니 20여명밖에 되지 않던 회원이 35명 정도로 늘어나게 됐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

"테니스는 개인마다 실력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대진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박 교수는 실력이 비슷비슷한 회원들끼리 경기를 해야 재미도 있고, 흥미를 느끼는데 실력차가 많이 나면 회원들이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일러줬다.

그래서 대회를 개최하면서 신인부·일반부·베테랑부를 구분했다. 최근에는 실버부를 만들어 55세 이상 회원들도 테니스를 재미있게 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자신이 속해 있는 '부'에서 경기를 해야지 다른 '부'로 옮기지 못해요" "베테랑부에 속한 회원들의 경우 웬만한 아마추어대회에 나가면 등수안에 들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테니스 선수였던 아버지 영향 받아

"지난해 대회를 할 때 아버지가 실버부에 참여하셨어요. 연세가 84세(박순배·녹십자의원)인데 4위를 하시더라구요."

박 교수가 테니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학창시절 테니스 선수였던 탓에 함께 코트를 많이 찾았다. 부전자전일까? 아버지의 실력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테니스 선수보다 몸이 강단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03년 여름 전국 베테랑대회에 출전해 50대부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 그해 가을 중국 심천에서 열린 세계 베테랑대회에 참가해 중위권에 들 정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랜드슬램(?)을 꿈꾸며

이뿐만 아니다. 박 교수는 전국 교수테니스대회에 참가해 복식에서 우승을 3번이나 하는 기록을 남겼다.

"1997년 처음으로 교수 테니스대회 대학 대표로 출전해 청년 B조에서 정재용 교수(인제대 상계백병원)와 함께 복식 우승을 했어요. 전국에 있는 교수들이 모두 참가한 것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체육학과 교수들까지 이겼으니 모두들 놀라지 않았겠어요?"

박 교수와 정 교수는 1998년 청년 A조에 출전해 복식에서 또 한번 우승을 했고, 2000년 일반부에 출전해 3번째 우승을 했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거란다. 박 교수는 서울고등학교 5년 후배인 정 교수와 앞으로 장년부에 출전해 4번째 우승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무릎을 크게 다쳐 연습량이 부족해 걱정이다.

 

"작은 공으로 하는 운동은 자신있어요"

박 교수는 테니스 뿐 아니라 자전거·성악·당구·탁구·야구에도 관심이 많다. 그 중에서도 테니스가 가장 자신있고 재밌단다.

그러던 그가 무릎을 다쳤으니 상심이 얼마나 컸을까? 처음 운동을 하다 무릎을 다쳤을 때에는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다친 무릎이 아물지도 았았는데 테니스를 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두번째 수술로 이어지고 말았다.

"의사말을 듣지 않는 의사는 저밖에 없을 겁니다"고 말하는 그는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테니스를 못하는 대신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다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신학공부와 씨름하고 있어요. 안수집사 교육이 끝나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열심히 할 겁니다."

하지만 스포츠면 뭐든지 자신있었던 그는 공부만 하기 힘든 모양이다. 얼마전부터는 당구 동호회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테니스처럼 한국의사당구연맹을 만들어 전국대회를 하는게 소원입니다." "평균 0.7정도 칩니다" "아주 잘 치는 사람이 평균 1정도는 되니 못치는 것은 아니죠" 하하하. "농구·축구는 잘 못해요. 공이 크잖아요. 혼자하면서 승부를 낼 수 있는 운동은 뭐든지 자신있어요. 승부욕이 남들보다 강하거든요."

 

이사람 의사 맞아?

의사가 아니었으면 무엇을 하고싶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참았다. 그런데 이런 맘을 읽었는지 박 교수는 갑자기 "의사가 아닌것 같죠?"라며 정곡을 찌른다.

신변잡기에 능하다보니 주변에서 의사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단다. "의사처럼 보이지 않아도 의사인걸 부정할 수는 없더군요. 이제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고 싶은데 늘 부족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노는 것에만 빠져 지냈던 것 같아요. 운동도 좋지만 이제는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남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박 교수는 배푸는 것이 작을지라도 그것을 받는 여러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 길이란다.

 

이제는 배푸는 삶을 살고 싶다

박 교수는 테니스연맹을 정재용 교수에게 거의 맡기다시피하고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테니스연맹 활동을 하면서 '희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것은 의사들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내가 희생했을 때 남들은 각각 몇 배의 즐거움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박 교수는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몸에 스며있으면 희생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네팔·내몽골·캄보디아·이집트 등에서 선교활동 및 봉사활동을 한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중국 선교활동을 계획중에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기 위해서다.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열정으로 사는 박 교수의 모습이 기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