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IMS 사건 "IMS 아닌 침술이므로 처분 적법"
IMS 요건 엄격히 해석···위법성 여부 판단 유보
'태백 IMS 사건'에 대해 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인 의사 엄모 원장의 의료행위를 IMS가 아닌 한의학의 침술로 간주해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IMS 자체에 대한 위법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법원이 현재 전국의 많은 의료기관에서 시술하고 있는 IMS 전체에 대해 불법이라고 본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재판과 관련해 엄모 원장의 행위를 한방의료행위인 침술에 해당한다고 보아 면허정지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앞서 서울행정법원 제14부(신동승 부장판사)는 지난 6일 태백시에서 개원하고 있는 엄모 원장이 IMS(Intramuscular stimulation, 근육 내 자극치료)를 시술한 데 대해 면허된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개월 15일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자 이에 불복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판결문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한의계와 일부 언론에선 "법원이 의사의 IMS 시술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8일 연합뉴스는 자체적으로 입수한 판결문을 인용해 "재판부는 IMS 자체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태백 IMS 사건 판결문 내용
연합뉴스에 따르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이 사건 시술행위가 침과 전기자극을 이용해 시행하는 IMS 시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IMS는 시행 전 X레이와 CT 촬영 등 병변을 찾는 정밀한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검사를 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원고의 행위는 IMS가 아닌 한의학의 전통 침술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IMS 시술은 근육 단축으로 인해 단축된 근육을 연축시키기 위한 시술인데 원고의 시술부위는 모두 한의학의 침술시 중요한 경혈 자리들로서 근육이 존재하는 부분이 아니라 표피여서 원고의 행위는 IMS 시술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의 행위는 IMS 시술에 해당하지 않고 한의학의 전통 침술행위에 해당하므로 면허정지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전국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IMS 시술이 시행되고 있고 원고가 복지부 공무원들로부터 'IMS 시술은 의료법 위반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았어도 원고의 시술은 IMS가 아닌 한의학의 침술 행위에 해당하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판부는 "IMS가 한의학의 침술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한다"고 규정해 IMS 자체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뉴스분석
8일 이번 재판의 실상이 공개되자 한의계 개원가는 당초의 승리가 반감됐다며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한의계 관계자는 "CT 2심에서 패했다가 이번에 이겨서 1승1패라고 좋아했는데 정작 IMS가 불법이라는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관련학회 IMS 과정 이수했으나 침술로 판단
이번 판결의 의미는 의사가 시술하는 IMS가 합법적인 의료행위가 되기 위한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IMS 자체가 한의학의 침술인지 여부에 대한 적극적인 판단은 유보했지만, IMS를 표방한 시술이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위한 조건을 예시함으로써 이에 대한 소극적인 판단은 주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IMS가 한의학의 침술이 되지 않으려면 ▲IMS 시행 전 X레이와 CT 촬영 등 병변을 찾는 정밀 검사를 해야 하고 ▲한의학의 경혈 위치와 대부분 일치해선 안 되며 ▲시술부위가 근육이 존재하는 부분이어야 한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또 한 가지는 학회에서 IMS 과정을 이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한의학의 침술을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엄모 원장도 대한보완의학회와 대한IMS학회에서 IMS 정규 교육과정을 밟았지만 이번 재판에서 졌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이번 재판이 의사의 IMS 시술 자체를 금지한 판결은 아니라는 점이다.
침으로 본 것 제외하면 복지부 유권해석과 일치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이례적인 것일까. 재판부가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에서 엄모 원장의 시술을 IMS가 아닌 침으로 분류한 점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지만, 이를 뺀 나머지 쟁점에 대한 법적 판단은 기존 복지부 유권해석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복지부는 "의사가 침을 사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는 의사의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라는 입장이다(의제 1421-13429, 1984.10.10).
반면 IMS로 인정되는 의료행위에 대해 복지부는 합법이라고 보고 있다. 복지부는 "의사가 니들(needle)을 이용하여 국소적인 자극요법으로 종기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의정 65507-394, 1994.4.6). 또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의학적으로 인정된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발통점) 주사요법의 드라이 니들링(dry needling) 시술시 한의학의 경락과 경혈이 아닌 트리거 포인트를 찔러 자극을 줄 때 근육에 대한 자극과 손상을 줄이기 위해 주사바늘 대신 침을 사용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다"고 밝혔다(의정 65507-799, 1998.9.25).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되 경혈은 피해라?
하지만 의료계는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IMS가 아닌 침술이라고 단정한 것에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단순히 침 또는 이와 유사한 바늘을 사용했다고 해서 한의학의 침술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IMS를 시술하는 반면 한의사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혈에 침을 놓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특히 재판부는 "원고의 시술부위가 모두 한의학의 침술시 중요한 경혈 자리"라는 이유를 들어 침술로 규정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의학에서 경락이란 몸에 기가 흐르는 통로를 말한다. 경혈은 경락선상에서 질병과 관련있는 부위로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자리다. 경혈을 이은 선이 경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경혈을 피해 IMS를 시술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WHO(세계보건기구)가 공인한 것만 361개다.
더구나 전통의학을 하는 한국·중국·일본의 경혈 위치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지난 2005년 4월 대전 한의학연구원에서 열린 '제4차 WHO 국제 침구 경혈위치 표준화 회의'에서 이들 세 나라는 경혈의 위치나 표현이 다른 58개를 일치시키기 위한 논의를 했다. 그러나 당시 끝내 수구·족삼리·용천·환도 등 12개의 경혈에 대해선 합의하지 못했다.
그럼 IMS를 할 때 경혈 361개만 피하면 한방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한의학에는 1000개의 '아시혈'이 있다. 아시혈(阿是穴)은 '아! 이것이 혈이구나'라는 의미로, 눌렀을 때 아픈 부위를 말한다. 아시혈은 넓은 의미에서 경혈의 일종이지만 위치는 경락선상에 있지 않다. WHO는 48개의 아시혈만 인정하고 있다.
2심은 IMS와 침의 학문적 구분이 쟁점 될 듯
엄모 원장은 이번 재판에 항소할 뜻을 이미 밝혔다. 2심 결과는 그의 의료행위가 침술이 아니라 IMS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이번 재판에서 한의계가 이길 수 있었던 데에는 한의사협회가 보조참가인으로 적극 개입하고, 침구학회 등 한의대 교수들이 대대적인 학문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의사 CT 2심에서 의협과 영상의학회가 보여줬듯이, 다가올 'IMS 2심'에서는 의협·보완의학회·IMS학회 등 의료계가 1심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의계, 고발전략 사용할 경우 '상생'은 없을 것
한의협은 이번 재판 선고가 끝난 직후 "법원이 '의사는 유사 침시술 행위를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며 "이는 향후 의사는 '유사 침시술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못박은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사들의 유사 침시술 행위에 대한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단속을 촉구하고 직접 고발하는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다(한의협은 IMS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유사 침시술 행위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함).
그러나 한의협의 이같은 발언은 판결문의 상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번 재판이 IMS 자체를 불법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고발전에 돌입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한의협이 무작위 고발에 나서더라도 개별행위를 일일이 IMS인지 침술인지 구분하긴 어렵다.
물론 다분히 공세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IMS 시술의 전반적인 위축을 노리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도리어 의료계로부터 크게 보복당할 소지가 크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의사가 침을 통해 약물을 주입하는 '약침'은 외견상 주사제와 동일하기 때문에 의료계에서 문제삼을 경우 IMS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약침에 대한 복지부 유권해석도 IMS와 마찬가지로 이중적이다. 즉 복지부는 "한의사의 주사행위는 그 업무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도(의제 01254-12855, 1986.10.16), "약물주입을 목적으로 하는 주사기를 경락이나 경혈에 침으로 대용, 사용함은 한방의료행위"라고 밝히고 있다(의제 01254-3479, 1987.1.13).
따라서 한의계가 법적 공방 대신 고발전을 택할 경우 자칫 의료광고 때와 같은 대규모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