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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한의대생…한의사협회장 회관밖 끌어내

막가는 한의대생…한의사협회장 회관밖 끌어내

  • 이현식 기자 hslee@kma.org
  • 승인 2006.09.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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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협 임직원에 "셋 셀동안 나가라"…불응하자 끌어내
한의대생 200명 '전문의' 건의안 폐기 요구 회관 점거

▲ 한의대 학생 200여명은 19일 한의협의 한의사 전문의 제도안에 반발, 회관 입구를 봉쇄했다.

한의과대학 학생들이 한의사협회 회관을 무단 점거하고 회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을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끌어낸 사건이 벌어졌다. 이유는 한의협이 이미 개원한 한의사 대부분에게도 전문의 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데 반발해서다.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연합(전한련) 소속 동국대 한의대생 200여명은 19일 오후 2시15분 서울 가양동 소재 한의협 회관에 진입해 협회 안에 있던 임직원들에게 "셋을 셀 동안에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통보했다. 이에 응하지 않은 상당수 사람들은 강제로 회관 밖 도로변에 내팽개쳤다. 이 과정에서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경우도 발생했다.

한의대생들은 이날 한의협 회관에서 밤샘 농성을 했으며, 20일 오전 11시 현재 여전히 건물을 장악하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별로 교대해 가면서 릴레이 투쟁을 할 방침이다.

"도장 찍어라" 학생들이 한의협 회장에  협박

당초 이날 전한련 대표들은 오후 2시 전문의 제도와 관련해 한의협 회장과 면담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전한련 상임위 소속 한의대생 10여명은 오후 2시15분께 회장실에 도착했다. 이와 동시에 200여명의 한의대 학생들이 협회를 둘러쌌다.

학생들은 한의협이 올 8월 복지부에 제출한 '개원의에 대한 전문의 응시자격 부여 건의안'을 폐기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미리 준비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도장을 찍을 것을 요구했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에 따르면 한의협 회장과 배석했던 이사들이 응하지 않자 다섯명의 학생들이 회장의 팔과 다리를 각각 들어 회관 정문 밖 길가에 내려놨다. 학생들이 회장실에 들어간 지 5분만의 일이었다.

협회 임원진과 대화 거부…시위 이유도 공개 안 해

한의대생들이 시위에 들어가자 경찰 5개 중대 병력이 현장에 투입됐다. 한의협은 최정국 대변인 겸 홍보이사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하고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한의협 측은 회관 내에 협회와 무관한 임대사무실도 있고, 사무처 전체를 폐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한련 대표인 정영찬 의장(세명대 한의대 본과 2년)은 최 대변인을 만나주지도 않고, 다른 학생을 통해 의견을 전달받은 뒤 다시 연락하는 방식을 취했다. 의견 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한의협은 이날 저녁으로 예정돼 있던 중앙이사회를 회관 대신 발산역 근처 식당에서 열어야만 했다. 회의 후 최 대변인이 집회와 관련된 이사회 의결사항을 다른 학생을 통해 전한련 의장에게 전달했으나, 회신은 받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 대화하지 않겠다는 통보만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

이날 학생들은 시위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한련 의장을 통한 공식적인 답변만 가능하다며 피했다. 전한련 의장은 마찬가지로 다른 학생을 통해 기자들과의 인터뷰는 서면 인터뷰만 가능하다고 전해왔다. 그나마 일부 기자들이 질문 리스트를 작성해 전달했으나, 연락을 담당하는 학생이 "오늘은 의장님이 피곤해서 서면 인터뷰도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전문의 자격 둘러싼 신·구 갈등…2000년이 기준

전한련은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한의협이 복지부에 건의한 개선안은 한의사 전문의를 무분별하게 양산할 것"이라며 "한의협은 건의안을 폐기하고 전한련을 포함해 범한의계적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이 복지부에 낸 경과조치안은 전문의 자격 응시자격을 2000년을 전후해 차별화했다. 즉 1999년 12월 이전에 면허를 받고 6년 이상 한방의료업무에 종사한 한의사는 300시간의 연수교육을 받으면 수련을 마친 것으로 인정해 전문의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안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졸업생에 대해선 명쾌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따라서 젊은 한의사들과 학생들은 전문의 자격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방 수련기관이 크게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한의사 전문의 또 물 건너가나' 비난 봇물

지난 1999년 4월 복지부는 개원 한의사들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한의대생들이 한의협을 점거·농성을 벌였고, 결국 일체의 특례는 인정되지 않았다.

한의계 개원가에선 이번 사태로 인해 1999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한의대생들의 주장 자체는 설득력이 있지만 무리한 시위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한련이 한의협에서 농성한 적은 많지만 회관 전체를 장악하고 회무를 방해한 것은 처음이다.

한 한의계 관계자는 "녹용 파동에 따른 후속대책 마련과 국정감사 준비에 매달려야 할 때인데 안타깝다"며 "최소한 한의협 사무처는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한약분쟁 당시에는 학생들이 한의협 회장의 얼굴에 계란을 던지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제 시위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의료계 한 관계자는 "한의협 예비회원인 학생들이 한의계 수장을 감히 끌어내 회관 밖으로 내던지는 것은 의료인 사회에서는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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