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척추성근위축증(SMA)이라는 유전적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부부가 모대학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병원에 1억 6000만원이라는 거액을 배상하도록 한 판결이 있었다.
이전에 척추성근위축증 아이를 두 명 출산한 산모가 이번에 태어날 아이는 정상인지를 알고자 병원을 방문하여 융모검사를 받았으나, 검사 결과 정상이라고 하여 출산을 하였지만 태어난 아이는 척추성근위측증으로 판명되어 산모와 가족이 의사의 오진으로 아이를 유산할 기회를 놓쳤다고 하여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였다. 이 판결은 두가지 점에서 의료인들에게 당혹감을 안겨 준다.
첫째는 SMA를 가진 태아를 임신한 산모에게 융모 검사 만에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다른 염색체 검사인 양수검사나 제대천자와 같은 다른 진단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70%의 배상 책임을 지게 했다는 점이다.
어떤 질병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고 비슷한 진단율의 다른 검사들이 있을 경우 의료진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그 중 한가지 검사를 택하여 검사를 시행한다. 융모검사나 양수검사, 제대천자는 모두 비슷한 진단율의 검사이기 때문에 중복하여 검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 판결대로 적절한 검사를 하여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차 범위의 결과 오류까지 우려하여 다른 추가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료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앞으로는 모든 환자들에게 이상이 발견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의학적 검사를 끝없이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는 환자들에게는 과잉 검사로 인하여 경제적 낭비를 초래할 뿐 아니라 보험 급여 기준에도 어긋나 의료인에게 과잉 검사라는 또 다른 과실을 묻는 사태를 가져올 것이다.
두번째로 당혹스러운 점은 인공 임신 중절의 허용 범위에 대한 것이다. 현재 인공 임신 중절의 법적 허용범위에 대하여는 모자보건법에서 정하고 있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 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위 적응증 모두 산모나 배우자의 질병이나 상태에 따른 것이며 태아의 상태에 따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태아가 아무리 심한 기형으로 태어나 생존이 불가능하더라도 아직은 법적으로 중절 수술을 허용 받을 수 없다. 이전에 비슷한 사례로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병원을 상대로 임신 중절수술의 선택권을 박탈한 점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는 모자보건법상 임신 중절의 허용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 부모가 태아를 적법하게 낙태할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아 이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의사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그런 대법원의 판례를 뒤집은 것으로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의 허용 범위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태아의 상태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법적 판단을 내린 것이어서 앞으로의 판단이 주목된다.
여하튼 이번 판결이 최종심에서 현재의 법적 기준이 무시되는 선례로 확정된다면 앞으로 의료인은 어떤 기준에 따라 인공 임신 중절의 선택권을 주어야 하는 지 판단하는 데 있어서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판결이 가져올 무분별한 인공임신중절 수술도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번 판결은 검사에 대한 의료인의 책임 범위와 인공 임신 중절의 허용 범위라는 두가지 점에서 의료인에게 무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