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업고 인기상승중..."의사들은 고프다?"
과거 연애담 위주의 메디컬드라마와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을 받는 두 편의 드라마가 최근 안방극장의 '흥행작'으로 떠올랐다.'하얀거탑'(MBC)과 '외과의사 봉달희'(SBS·이하 '봉달희')는 병원 안의 리얼리티를 잘 살려내 '이것이 진짜 병원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메디컬'에 방점을 찍은 메디컬드라마로 등장했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하다.두 편의 드라마 모두 '정통 메디컬드라마'를 표방하며 매편 2억여원의 투자를 감행했지만, '설정' 면에서 완전한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하얀거탑'은 원전인 일본소설을 따르다보니 국내 병원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고, '봉달희'는 외국드라마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들 드라마가 병원의 리얼리티를 살려내면서 한국 상황에 맞는 병원 이야기를 다룬 메디컬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
방송사 '비장의 카드', 메디컬드라마
흰 가운을 입은 드라마 두 편이 동시에 선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방송사마다 올해 메디컬드라마를 잇따라 방영할 예정이어서 메디컬드라마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MBC는 '하얀거탑' 이후 메디컬과 판타지를 엮은 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다.SBS 역시 비주류 의사들이 모여 병원을 설립한 내용을 다룬 메디컬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고, 9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모은 '종합병원' 제작진들이 '종합병원2'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지난해 사극이 대세를 이루는 동안 현대물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이제 기존의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드라마를 요구하는 분위기"라며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전문직드라마이고 그 첫번째 포문을 연 것이 메디컬드라마"라고 해석했다.
'하얀거탑'을 제작한 김종학 프로덕션은 "메디컬드라마는 리얼한 직업의 세계와 살아있는 인간의 이야기가 조합된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고, 드라마작가들의 모임인 '에이스토리' 역시 "미국의 'ER''그레이아나토미' 일본의 '구명병동' 등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시리즈물에는 유독 메디컬드라마가 눈에 띈다"며 메디컬 드라마의 매력을 강조했다.
기존
드라마에 비해 달라진 점
'리얼리티' 살려내고
'병원이야기' 다뤄
올해 등장한 메디컬드라마는 90년대 중반 등장했던 것들에 비해 '메디컬'에 충실한 메디컬드라마로 성장했다. '봉달희' 보조작가로 참여하고 있는 강석훈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임상강사의 말을 빌리면 "병원에서 가운입고 연애하는 드라마가 아닌 '의사'가 연애하는 드라마"로 변화한 셈이다.병원을 무대로만 설정한 게 아니라 의사들의 삶과 병원 속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말이다.'하얀거탑'의 경우 '의사의 연애'가 아닌 '의사의 정치'를 다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정덕현 씨는 "과거 메디컬드라마는 본격적인 메디컬드라마라고 부르기에는 자료나 검증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의학 혹은 병원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그저 병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멜로드라마를 다뤘다고 보여진다"며 "하지만 최근 메디컬드라마들은 본격적으로 병원을 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메디컬드라마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리얼리티'이다.'하얀거탑'은 촬영장인 아주대병원에 1200평 규모의 세트장을 마련하고 수술실·연구실·집무실 등을 실제 병원처럼 구성했다.'봉달희' 역시 별도의 수술실·응급실·중환자실을 구성, 병원의 세밀한 묘사에 신경썼다.이들 드라마의 제작비도 회당 2억여원 선으로, 다른 드라마에 비해 5배 정도는 높은 액수다.
특히 메디컬드라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수술장면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하얀거탑'은 2500만여원의 더미, 종양이 있는 췌장 등을 마련해 실제 수술과 흡사하도록 노력했다.천재의사의 재빠른 손놀림을 화면에 담기 위해 실제 의사(주종우 순천향대부천병원 교수)의 손을 빌려 촬영하기도 했다.
세련된 '리얼리티'가 드라마의 신뢰성을 높여줬다면 기존 드라마와 달라진 '스토리'는 드라마의 맛을 더해줬다.지금까지 국내 메디컬드라마는 병원이야기를 아주 안 다룬 것은 아니지만 대개 남녀 주인공의 연애담을 위주로 진행됐다.그러나 '하얀거탑'의 경우 '의사들의 정치드라마'라고 할 만큼 병원내 의사간 갈등과 수술 경쟁이 스토리라인을 형성하고 있어 시청자들로부터 "진짜 병원이야기 맞구나"라는 평을 얻고 있다.
'봉달희'는 연애담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주인공이 외과의사 전문의로 성장하는 과정에 주력, 기존의 메디컬드라마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한계는 여전…"실제 현실과 맞지 않아"
올해 메디컬드라마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는 있어 보인다.특히 의사들은 "병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리얼리티'에 주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얼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하얀거탑' 자문의사로 참여하고 있는 김형철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부천병원·외과장)는 "드라마의 원작이 일본소설이기 때문에 일본 병원의 배경을 다루고 있어 국내 의료체계와는 다르다"고 꼬집었다.국내 종합병원에서는 과장이 되고자 분투하지 않으며, 특히 투표를 통해 과장을 선출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처럼 '정치적인 암투'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주종우 교수는 "드라마에서 임상강사가 전임의보다 직함이 낮은 것으로 설정된 점, CPR(심폐기능소생) 및 오픈카드형 마사지 등을 마취과 의사가 아닌 외과의사가 직접 한 것, 환자의 오른편이 아닌 왼편에서 진찰한 것 등의 오류가 있었다"고 짚어냈다.
'봉달희' 보조작가인 강석훈 서울대병원 임상강사는 "심장박동 장비 시뮬레이터가 좋지 않아 의사들이 보기에는 영 시원찮아 보일 수 있다"며 "의사가 봐도 리얼리티가 살아야 시청자에게 더욱 생생한 메디컬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담을까?
메디컬드라마의 승부수는 리얼리티와 소재에 달렸다.리얼리티는 결국 투자액수와 비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실제 병원과 수술장면을 똑같이 재현해 내는 데는 돈이 필요한 문제다.올해 등장한 메디컬드라마들은 막대한 투자에 발맞춰 '자문 의사단'을 적극 활용, 실제 의사들로부터 정확한 조언을 챙겨듣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문제는 드라마의 소재다.'하얀거탑'의 경우 시청자들로부터 참신하다는 호응을 얻었지만 일본소설인 원작에 기댔다는 점에서 분명 한계는 있다.'봉달희' 역시 이야기의 구성과 주인공의 설정 등이 미국 메디컬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와 흡사해 시청자들로부터 표절시비가 붙기도 했다.독창적인 소재발굴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실제 드라마 자문의사로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의료상황을 제대로 알려주는" 소재를 다뤘으면 하고 바랐다.지난해 모 의료전문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의사들이 메디컬드라마에 가장 담았으면 하는 내용으로 '보건의료계 정책의 문제점'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김형철 교수는 "의사들이 의료보험 문제로 심평원 등과 부딪히는 점들, 수술·진료를 위해 의사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등을 에피소드식으로나마 드라마에 반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석훈 임상강사는 "의료정책의 맹점이나 모순된 상황, 의사와 약사·한의사 등과의 관계나 의료산업 등의 내용이 다뤄졌으면"하고 바랐고, 정은주 회원(외과 전문의)은 "장기기증 등 국내에서 조금씩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점들을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기영 아주의대 의학교육실장(정신과 교수)은 "메디컬드라마가 의학교육에 활용될 수 있을 정도로 의료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의료현실의 문제점을 녹여냈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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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교수(순천향대부천병원·외과)
①이기원 작가가 지난해 봄부터 찾아왔다.처음에는 자신도 없었고 드라마가 의사의 의도와 달리 흘러갈 것을 우려해 거절했으나 '누군가는 의학 자문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문을 수락했다.
②드라마에서 어떤 질병을 다룰지 정해줬다.드라마에서 극적 반전도 노릴 수 있고 외과 의사들의 힘든 점들을 잘 부각시킬 수 있는 간담췌 관련 질병 등 상황설정에 대한 조언을 해줬다.촬영팀들에게 외과 의국 회의나 학술대회 심지어 회식까지 참석, 생생한 분위기를 스케치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③주인공이 권력암투에 빠져있는 점이 아쉽다.모든 의사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간담췌 분야를 선택한 의사들은 돈이나 명예보다는 정말 소신을 갖고 이 분야를 선택하는데, 야욕에만 치우친 모습이 안타깝다.
④의료정책적인 내용이나 보험 문제로 심평원 등과 부딪히는 내용. 훌륭한 의사를 발굴해 '허준'같은 드라마 만들었으면 좋겠다.
주종우 교수(순천향대부천병원·외과)
①김형철 교수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②일본 원작은 상부소화기를 다뤘는데 '하얀거탑'은 간담췌장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는데 주력한다.김명민 씨가 수술 연기할 때 손 연기를 대역해주기도 했다.CPR 방법을 손수 시범보이다 더미 갈비뼈를 몇 개 부러뜨리기도 했다.
③원래 드라마를 모두 찍어놓고 방영하려고했는데 방영이 빨라져 촬영이 바빠졌다.수술신 찍을 때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
④의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담았으면 싶다.특히 요즘 외과 지원율이 낮은데 레지던트 없는 상황들을 담았으면.
문종호 교수(순천향대부천병원·내과)
①김형철 교수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②만성췌장염 환자 설정이라든지, 담관낭종의 합병증으로 발생된 담석을 동반한 급성 담낭염 등의 질환을 제시·조언해줬다.극중 내과의사로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최도영(이선균 역)의 캐릭터가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 의사상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③의학적인 완성도는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④한국의 의료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외과의사
봉달희' 자문의사
강석훈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임상강사
①2005년 SBS에서 주최하는 미니시리즈 기획안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운좋게 보조작가로 참여하게 됐다.
②대본의 초본을 써서 메인작가에게 넘기고 자막작업을 돕는다.구성회의 때마다 모르는 것들은 응급의학과·신경외과 등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③배우들의 연기가 의료인같지 않은 미숙함이 있다.거듭 촬영하고 의사들의 연기지도(?)를 받기는 하지만 직업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는 있는 것 같다.
④의사와 약사·한의사 등 인접 의료인과의 갈등이나 의료제도의 모순점, 의료산업 등을 다뤘으면 좋겠다.
정은주 회원(외과 전문의)
①메디게이트에서 공고를 보고 응모했다.
②대본 감수를 비롯해 현장에서 수술장면을 일일이 챙겨주고 지나가는 환자, 병원의 세팅 등에 관한 도움을 준다.촬영내내 밤새도록 붙어 있어야 했다.
③의사 입장에서는 '옥의 티'만 보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의사와 환자' 얘기를 다룬 점을 높게 산다.
④장기기증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또 돈 때문에 치료를 못하는
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아픈 심정도 실어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