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 이상 쏟아져 나와…"임상 현장 수요 없어" 지적
정부, 상담수가 책정…철저한 교육과정 및 인증제도 필요
누구나 돈만 내면 언제든지 나의 유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유전자검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는 유전자검사가 활성화된 이후 나타난 문제점및 실태와 함께 유전자검사와 관련해 가까운 미래에 대두될 이슈와 미래 유전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짚어본다. (1)유전자검사는 의료행위가
아니다? |
인구, 미국 29억3655만명 vs 한국 4808만명(2004년 기준)
국민 1인당 의료비, 미국 6102달러 vs 한국 787달러(2004년 기준)
유전자상담사, 미국 2500명 vs 한국 3000명 이상?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 규모가 미국의 1/8 수준에 불과한 한국에서 유전자상담사 수는 오히려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미국이 1970년대부터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유전상담사 과정을 발전시켜 온 데 비해, 한국은 유전자검사의 붐이 인지 불과 5년여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
널리 알려진대로 이처럼 국내에 유전자상담사가 많아진 이유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생명윤리법) 시행 이전부터 무분별한 유전자검사가 성행하면서 바이오벤처 업계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유전자상담사 양성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들은 '유전상담'보다는 '유전자검사 영업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은 생명윤리법 시행 이후에도 마찬가지어서 무분별한 유전자상담사 양성이 눈에 띄게 줄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유전자상담사가 되기 위해 만만찮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98만원에 23시간 교육받으면 상담사?
"생명과학 학부생 4학년 학생입니다. 우리나라에 유전자상담사가 있다는데…생명과학과 졸업하고 갈 수 있는 직장은 어디가 있을까요?"
생명과학 관계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웹사이트 게시판에서는 이처럼 진로를 고민하는 생명과학 분야 졸업생 또는 졸업예정자들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정은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생명윤리법 시행과 함께 바이오벤처 회사에서 실시할 수 있는 유전자검사 항목이 제한되면서 유전자상담사 분야 역시 거품이 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전자상담사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유전자상담사 자격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생명공학유전자학회. 지난 2004년 과학기술부로부터 승인받은 사단법인으로, 바이오벤처 회사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생명공학유전자학회가 실시하는 유전자상담사 자격 과정은 일반 유전자상담사(GC)와 임상유전학상담사(MGC) 등으로 나뉘는데, 질병 예방 및 관리에 대한 상담을 담당하는 '임상유전학상담사'의 경우 교육비용으로 98만원(교육비용 38만원+학회 준회원 가입비용 60만원)을 내고 22시간 30분의 교육을 이수하면 된다.
생명공학유전자학회는 "학회가 과기부로부터 공식 허가받은 사업 영역에는 엄연히 유전자상담사의 교육 및 자격심사에 대한 부분이 있다"면서 "일정 교육 과정을 이수한 사람에 한해 학회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격의 질을 높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정부가 인정하는 국내 유전자상담사 자격증은 없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고, 또 현 생명윤리법이나 정부의 전면개정안 어디에도 유전자상담사와 관련한 조항은 없다. 다시말해 아직까지 유전자상담사에 대한 공식화된 과정이나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김현주 대한의학유전학회장(아주의대 의학유전학 교수)은 "임상유전자상담사를 양성한다는 교육과정을 검토한 결과 의학박사가 강의하는 내용은 딱 1시간 30분이고, 나머지 강의는 수의학자·경영학 전공자·바이오벤처 대표 등이 하는데 어떻게 임상 상담가를 양성한다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며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유전상담 자격 기준으로 관련단체가 인정하는 대학의 의학유전학 석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단순히 몇 시간 교육을 이수했다고 자격을 주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발끈했다.
◆"자격증 따도 정작 할 일이 없다"
이렇게 유전자상담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 유전상담보다는 유전자검사를 유치하기 위한 영업 전선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
실제 인터넷 게시판을 검색해보면, 국내 유전자상담사의 한계를 보여주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제까지 다닌 회사가 지난해까지 유전자상담사 1·2·3급을 만들어 마구 자격증을 날리던데, 회사차원에서 보험회사 직원처럼 뽑아서 하는 거다", "이 분야에서 2년동안 일하고 있는데, 상담사의 역할은 (유전자검사를 의뢰할) 병원을 개척하는 것" 등의 내용이다.
생명공학유전자학회 관계자도 "국내에 아직 유전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않아 유전자상담사의 정해진 업무란 게 뚜렷이 없다"면서 "현재로선 병원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은데, 유전자상담을 할 수 없다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에서 유전자에 대한 교육 강사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결국 미래의 유망직종이라는 이유로 유전자상담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당장 이들이 제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것.
이에 대해 의학유전학 전문가들은 그동안 불필요한 유전자상담사가 지나치게 많이 양산된 나머지, 이들의 부적절한 영업행위를 방치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종원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유전검사클리닉)는 "아직 대형병원에서도 유전클리닉이 활성화되지 않은 실정인데, 하물며 일선 의료기관에서 유전자상담사를 고용해 실제 유전상담에 활용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며 "그동안 유전자상담사들이 부적절한 영업행위 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아무런 법적 근거나 현장 수요가 없는데도 민간 단체에서 1년에 수십명씩 유전자상담사를 양성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꼬집했다.
비교적 유전자상담 행위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1982년부터 유전상담사 인증제도를 도입, 1993년까지 10년동안 약 2500명을 배출하는 데 그치는 등 그 과정을 매우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2003년부터 인정유전카운슬러 양성 전문과정을 시작해 2011년까지 약 110명 내외의 유전상담사 배출을 목표로 할 정도로 1년에 소수의 전문가만을 양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요성 인정…공식 인증과정 도입해야
과기부는 올해부터 유전자상담사 자격 발급 사업에 앞장서 온 해당 학회에 '유전자상담사 과정 등 수익사업을 금지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생명공학유전자학회는 '국제유전자상담사협회'를 창립해 자격 과정을 이관하고, 한술 더 떠 MGC 이수자에게 미국 University of Natural Medicine과 연계해 1주일간의 미국 연수와 한국에서의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미 대학의 석사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복지부는 "민간자격법에 의해 해당 학회가 유전자상담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유전자상담사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고민은 하고 있지만, 아직 비과학적인 유전자검사 등 산재한 문제가 많은데 정부가 나서서 유전자상담사 양성을 공식화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학회 및 관련 전문가들은 복지부의 대응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제대로된 유전상담사 양성과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오는 2009년부터 학회 차원에서 유전상담사 인증시험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는 김현주 회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민간단체의 엉터리 자격증 남발을 지적해왔지만, 복지부는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유전상담은 유전성 질환이나 유전자연구 분야에서 환자와 가족에게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심리·사회적 문제를 상담하는 임상의 한 과정으로,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교육과정과 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은 "검사 의뢰자가 검사 전후에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전문적인 유전상담사를 배출할 필요가 있다"며 "최소 대학원 이상의 코스에 유전상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개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유전자전문위원회 위원(원자력의학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먼저 정부와 의료계, 일반 시민이 유전상담사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두가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우선 정부가 유전상담에 대한 적절한 수가를 책정하고, 공신력 있는 관련학회가 정식 인증절차를 마련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