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달을 사가세요"
"저의 달을 사가세요"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7.02.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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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전임의

'피플앤 포커스' 인터뷰를 하다보면 명함을 두 장 받는 경우가 많다. 강석훈 전임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서울대병원 로고가 찍힌 공식적인 명함 말고도 타자기 서체로 인쇄된 명함 한 장을 더 건네줬다. 명함에는 '달 파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드라마·영화 시나리오 작가 강석훈, 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무슨 의미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그는 미처 끝나지 않은 회의테이블로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모임 이름인가 가늠하며 인터뷰 도중 물어보아야겠다고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첫 참여작 '외과의사 봉달희'

지난 2006년 6월 13일 독일월드컵 한국 대 토고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그는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SBS 김영섭 프로듀서였다. 메디컬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를 구상중인데, 보조작가로 참여해 줄 수 있겠느냐는 '러브콜'이었다. 마다할 리 없는 제안이었다. 인턴시절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다짐한 뒤 오 년만에 실제 미니시리즈에 참여하게 되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메인작가를 만나고 각종 아이디어회의에 참석하면서 그는 바빠졌다.

'봉달희' 팀에서 그를 보조작가로 채용한 것은 전혀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2005년 8월 SBS에서 주최한 미니시리즈 기획안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상작인 '종합병원'은 한 1년차 가정의학과 전공의가 2차병원으로 파견나가서 겪는 애환과 사랑을 담은 성장드라마였다. 어딘지 '봉달희'와 빼닮은 면이 없지 않다.

"시나리오 습작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메디컬드라마는 쓰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스스로 만든 금기와도 같았죠. 의사라는 정체성이 작가라는 정체성에 곧바로 연결되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그런데 거듭 공모전에서 실패하자, 안되겠다 싶어 메디컬드라마를 써봤습니다. 제가 수상한 것도 '메디컬'이라는 소재의 영향력이 다분했다고 봅니다. 하하."

작가는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초보작가의 한계라기보다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데 영향을 끼쳤던 '이유'가 바로 주변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역시 '병원·의사·환자' 속에서 작가의 '이유'를 찾아냈다.

 

어느날 문득 '시나리오'를 쓰게 된 이유

1998년 서울대병원 소아혈액종양 병동. 햇병아리 인턴이던 그는 주치의 오더에 대한 슬립 만들기 업무를 맡고 있었다. 불현듯 저만치서 무엇인가가 반짝했다. 얼마전에 죽은 세 살배기 여아의 진료카드였다.

진료카드 한 장 덩그러니 남겨두고 죽은 아이의 삶이 허망했다. 그는 진료카드를 들고 함춘원으로 가져가 땅에 묻은 뒤 제사를 지내줬다. 다음날 당직실에서 눈을 떴더니 창밖에서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비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는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죽은 아이들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들은 '꿈'이라는 단어도 모르고 그렇게 갔구나. 나는 과연 내 꿈을 알고 있을까? '나만의 꿈'이란 무엇일까?"

시나리오는 그만의 꿈으로 새롭게 떠올랐다. 그날부터 그는 새벽 1시무렵 업무가 끝나면 글쓰기에 골몰, 첫 작품인 '사체의 진원'을 탈고했다. 죽은 환자를 부검하면서 진행된 사건을 다룬 작품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몇 부씩 출력해 가지고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잠도 못 자는 애가 미쳤구나"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그 뒤로도 시나리오 습작을 게을리하지 않던 그는 2002년 KBS 방송아카데미 드라마창작 교육과정을 들었다. 본격적인 시나리오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그의 시놉시스 3개가 채택돼 수료생중 최우수작품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만 쓰겠다고 자만하고 다녔습니다. '제3열'이란 작품이 롯데시네마 투자로 영화화되려다 무산됐는데 그런 '실패'가 없었으면 계속 자만했을 겁니다."

'실패'한 초보 시나리오작가는 이듬해인 2003년 삼성의료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의사도 울면서 폭발해야 한다

작가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지적은 '감정을 너무 감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재미없어 했다.

"의사와 작가의 공통점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처방전을 내리기 위해 이모저모 생각을 많이 하는 의사처럼 시나리오 작가도 한 줄의 대사를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의사는 냉정해야 하는 반면 작가는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고 트레이닝 받아왔던 그는, 작가들의 수많은 지적과 비판 앞에서 어느순간 '폭발'했다. 울면서 대사를 쓰니까 대사가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의사이면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감정을 절제하면서 폭발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도인처럼 냉정했다가 난봉꾼처럼 객기를 부릴 수 있을까.

"한 번 '폭발'하고 나니까 쉽더군요. 감정 다스리는 게 더 쉽구요. 평상시에는 안 그런데 대본 쓸 때는 스스로 폭발하는 걸 느낍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폭발하는 법'을 가르쳐줄 정도에요."

 

' 달은 파는 사람 '

그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해 김주한 교수(의협 정보통신이사) 밑에서 의료정보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가 "용어가 틀렸다"고 핀잔을 받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두 마리 토끼' 운운하면 자기회의에 빠질 우려가 크거든요. 이것저것 다 잡겠다는 게 아니라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쓴 '제3열'(탈북자를 통해 분단현실을 비판적으로 짚어본 작품)처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아참, 까먹을 뻔 했다. '달을 파는 사람'은 뭐죠?

"어렸을 때 제 방에서 커다란 달이 환하게 보였는데, 가족들에게 '달 관람료'를 받고 방문을 개방했지요. 영약한 아이였지요(웃음)."

그것과 시나리오 작가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각자 해석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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