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안을 지난 달 22일 입법예고 했다.
입법예고 기간은 2월 24일부터 3월 25일까지 30일간으로 통상의 입법예고 기간 20일보다 10일을 연장했는데 복지부는 이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연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의협은 복지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결사항전의 태세를 갖추고 '모 아니면 도'라는 각오로 장외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태가 사태이다 보니 의료계는 강경투쟁 분위기에 휩싸여 의료법 개정에 대한 차분한 대응책이나 의료법 자체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의사 출신으로 국회라는 곳에 앉아서 법이 입안되고 의견이 조율되는 과정을 보면서 의료법 개정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들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에 아쉬운 생각이 들어 펜을 들게 됐다. 나 역시 국회의원의 보좌관 이전에 의사로서 의료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몇가지 조언을 하고 앞으로의 대응책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겠다.
우선 의료법 개정의 절차를 쉽게 알기 위해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법률의 개정 절차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이번과 같이 복지부 등 정부에서 의료법 개정안을 내는 경우는 복지부에서 법제처로 개정안을 보내고(자구수정과 위헌여부확인) 그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발표한 후 이를 대통령에 보고한다.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장관 또는 차관이 법안의 제안을 설명한다. 여기까지 대체로 약 30일 가량 걸린다. 이후 법안을 국회 의장에게 보내면 국회 의장은 이 법안을 소관 상임위 즉, 보건복지위원회 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보내고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쳐 복지위 내 법안심사소위에서 마지막 결의를 하고 보건복지위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 후 법사위원회로 넘어간다. 이를 모두 통과하면 본회의에 상정되어 표결에 부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작년 8월 28일부터 금년 1월 12일까지 총 10여차례의 '의료법개정실무작업반' 회의를 통해 결정된 내용이다.
의사협회에서 지적하듯 상견례 및 회의 운영방식을 논의한 1차 회의를 제외하면 의료법 개정 시안에 대한 논의는 총 9차례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의료계의 주장처럼 논의 일정이 촉박했던 것으로 보이나 의협의 대응 역시 기민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의협은 논의 안건이 회의시마다 각각 제시된 수 가지의 조문화된 시안이었던 만큼 각 조문별로 심도있는 검토 시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실무작업반 위원 모두 회의자료를 매 회의시마다 길면 3일, 심지어는 회의 전날 시안을 송부받았다는 것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없었던 이유로 꼽고 있지만 의료법 개정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몇 년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것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미 벌이진 만큼 지금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의 경험을 살려 보다 효율적인 대응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료계만 감정에 복받쳐 강경대응 일변도로 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대응방식은 이미 의료계가 몇 차례 경험한 바 있듯이 국민들로부터 설득력과 호소력을 얻을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극렬 투쟁을 일삼는 노조에 등을 돌리고 있는 최근의 상황은 의료계의 수차례 집회나 장외투쟁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이제 의협은 의협 자체의 의료법안을 갖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나온 정부안에 대한 정확한 문제점 지적과 그에 대한 적극적 공청회 또는 토론회를 만들어내고 참여해서 정당한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장외 투쟁에서 얻은 것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입법안이 예고되고 이제는 국회라는 공간으로 싸움이 옮겨 붙었다. 국회의원들에게 이번 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설득을 그동안 얼마나 했는지 뒤돌아 보아야 할 시점이다. 무조건적인 반대와 장외투쟁은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되고 결국 이번 의료법이 쉽게 통과되도록 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표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국민을 등에 없지 못하는 주장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많은 국회의원을 알고 아무리 많은 집회를 한다고 해도 설득력이 없고 주장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때, 또 다시 7년전의 교훈을 되씹으며 이번 투쟁을 접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30일 동안 열릴 많은 공청회에 참여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확실히 개진할 준비태세를 차분한 가운데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빨리 의협 자체의 의료법 개정안을 제시해 대책없이 반대만 하는 의사들이란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때보다 업그레이드된 의협의 정책활동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
회원들에게도, 국회의원들에게도 무엇보다 국민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