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치 성과란 인식은 역사 왜곡에서 비롯
대한제국의 근대화 위한 노력에 대한 이해부족도 한 몫
대한의원이 일본 통치의 성과란 인식은 일본 식민통치 당국이 선전하던 역사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국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과 성과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대한의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병원은 6일 임상의학연구소 강당에서 '동아시아에서 서양 근대의학의 도입과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태진 교수(서울대 국사학과·인문대학장)는 '인정(仁政)의 의술의 극대화-그 주체를 중심으로' 주제발표를 통해 "대한의원은 지금까지 일본의 통감부가 세운 침략정책의 산물로 간주됐으나 이러한 이해는 대한의원 창설 배경에 관한 충분한 고찰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한제국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독립국으로서의 국제적 요건을 하나라도 더 갖추기 위해 1905년 대한적십자병원과 대한적십자사를 창설했다"면서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측이 대한제국의 다변화된 의료기관을 하나로 통합해 동제에 편의성을 기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대한의원은 그 종착점"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대한의원이나 중앙은행·한성전기회사 등은 이토 히로부미의 자치육성책의 미명 속에 통감부의 업적으로 둔갑해 역사왜곡의 실체로 남게 됐다"면서 "대한의원의 존재를 일제의 식민통치의 산물로 간주해 대한제국의 역사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의 기만정책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관립중학교·전문학교·학부 직속의 의학교·궁내부 산하의 광무학교·농상학교 등은 초기 근대화 사업의 일환이자, 정부의 국립학교 설립운동의 성과로 재조명하는 것이 잃어버린 역사 되찾기로서 좀더 적극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의 서양의학 수용과 정부의 역할(이시다 스미오 교수·일본 니이미 공립단기대학) ▲중국의 서양의학 수용과 정부의 역할(브라이디 앤드류스 미나한 교수·미국 벤틀리대학 사학과) ▲타이완에서 일본 식민의학의 기조(리우시영 방문교수·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선교와 근대화(류대영 교수·한동대) ▲한국에서 서양근대의학의 수용과 국가(전우용 교수·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으며, 신동원 교수(KAIST 문화과학대학)·김호 교수(경인교육대학)·이지마 와타루 교수(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등이 지정토론을 벌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의사학(醫史學)과 관련해 처음 마련된 국제심포지엄이란 이정표도 세웠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명철 초대 서울대병원사연구실장은 "'역사는 현재를 밝히는 빛이자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라면서 "병원사연구실은 서울대병원 역사와 한국 의료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 유수의 의사학 연구자 및 연구기관과 교류하면서, 서울대병원의 미래를 밝히는 한 점 등불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성상철 서울대병원장은 "대한의원 건물에는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 건물과 병원 곳곳에는 선진의학을 수용해 한국적 의학으로 재창조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의료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한국의학을 선두에서 이끌어 온 서울대병원 역대 교직원들의 고뇌와 노력도 아로새겨져 있다"고 밝혔다. 성 원장은 "아픈 역사와 단절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역사를 망각의 세계로 내몰아서는 안될 것"이라며 "이번 국제심포지엄이 과거 역사의 명암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한국 의학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을 모색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심포지엄에는 김신복 서울대 부총장과 권이혁·주근원·이정균·한만청·지제근 명예교수, 왕규창 서울의대 학장·신용하 서울대 교수 등 학내외 원로 및 명예교수 100여명이 참석, 새롭게 조명하는 대한의원의 역사를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