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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500번이나 물에 뛰어든 이유"
"내가 1500번이나 물에 뛰어든 이유"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7.05.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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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범 수중촬영전문가.한빛정신과의원장

고동범 원장의 타이틀을 '수중촬영 전문가'로 할지 '국내 후새류 전문가'로 할지 고민하다가 앞의 것으로 결정했다.
많은 수중촬영가들이 후새류(연체동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를 즐겨 찍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새류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냥 접근하기 쉽고 예쁘니까 사진에 담을 뿐이다. 그런데 그 역은 더 심하다. 후새류를 잘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국내 후새류 전문가들은 바닷속에 있는 후새류를 거의 만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후새류를 만나고 사진찍지만 후새류를 잘 모르는 수중촬영가나, 후새류는 좀 알지만 후새류를 제대로 찾아본 적은 없는 학자. 고 원장을 만난 후 그는 이 두 가지 지점을 융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겸비해 바닷속 저 어딘가 널려있는 '한국 후새류'를 발굴해 세계에 알린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를 '국내 후새류 전문가'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었다. 왜 그럴까?

 

처음엔 단지 바다가 좋았는데

고 원장은 20년 가까이 제주도에 살았지만 원래는 전라도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1990년 정신과 전문의를 따자마자 뭍을 떠나 제주로 왔다고 했다.

"본적이 제주도입니다. 학창시절 방학 때마다 제주도에 놀러와 바닷가를 쏘다녔는데 신기한 것도 많이 보고, 푸른 바다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제주도에 온 뒤 그는 곧바로 바닷속에 뛰어들었다. 지난 15년간 무려 1500번을 넘게 다이빙을 했다.

"바닷속에 있으면 사방이 조용하고 제 숨소리밖에 안 들립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뽀로록' 공기방울 소리만 듣고 있으면 참 편안합니다. 장비를 갖추기 때문에 물 속에서 숨 쉬는 것은 물론 어렵지 않구요."

그러고 나서 2년뒤 물속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사진관을 경영하던 할아버지 덕에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있던 탓도 컸지만, 바닷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생물들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그는 본격적으로 수중촬영을 시작해 약 1만컷 이상의 사진을 갖게 됐다. 1994년 한국수중사진촬영경기대회에서 은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많은 촬영대회와 공모전에서 12개 정도의 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다음엔 아름다운 '그것'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잘'의 의미는 아름답다는 예술적인 차원이 아니라, 수중 생태계를 알려주는 학문적인 차원의 것이다.

해양사진으로 많은 상을 탔기도 했지만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바로 '바닷속 후새류의 삶'이다. 그는 점점 많이 쌓이는 후새류 사진을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었다. 이따금 대학교수나 전문가에게 사진 자료를 기증하기는 했지만 많은 사진을 '썩히고 있다'는 생각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2002년 해양생물 관련 연구원과 교수 몇 명이 해양생물 단행본 출판을 제안해왔다. 고 원장이 사진만 제공하면 나머지 서술은 학자들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었다. 고 원장은 기쁜 마음에 수락했지만,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잘못 기술한 부분이 상당수 나왔기 때문이었다.

2004년에는 민패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민덕기 소장의 권유로 <한국패류도감>을 집필하는데 참여했다. 이 책에서 그는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소개된 바 없는 국내 후새류 50종을 공식 소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도 150종 정도의 미공개 후새류 사진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 나만큼 후새류 아는 사람 없다"

그는 지난해 발간한 책 <한국후새류도감>에서 200여종의 국내 후새류를 전격 발표했다. 지금까지 국내 해양분류서적에 발표된 한국 후새류는 1993년 6종을 시작으로 50종이 전부였다. 한꺼번에 200종이 쏟아져 나왔으니 학계에서 관심이 대단하지 않았을까?

"별 반응 없었습니다. 아마 입장은 좀 난처했을 테죠."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후새류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다. 해양생물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중에서도 후새류만을 본격 탐구하려면 쉽게 말해 '밥먹고 살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기 때문이다.

150종이 넘는 새로운 후새류가 고 원장의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것을 한국패류학회에 보고해 공식 학명을 붙이려면 150종에 대한 논문을 써서 보고해야 한다. 학자들이 하기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더군다나 학자도 아닌 의사 한 사람이 이 책을 발표했으니 국내 학계로서는 말 그대로 놀랄 노자다.

반면 외국에서는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앞에 서식하는 후새류들이 한국 동해에서도 발견됐다는 점이 밝혀지는 등 세계 학계에서 놀랄 만한 사실들이 보고됐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고 원장은 오는 9월 세계학자들이 두루 모인 포럼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을 받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 저만큼 후새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해부학·조직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데다 분류학에서도 자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접근이 쉬웠거든요. 실제로 패류 용어는 해부학 용어와 거의 같습니다."

 

그래도 '후새류전문가'일 수 없는 이유

"18~19세기 분류학자중에는 의사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거 발견하면 죄다 학명에 자기 이름 붙이고, 마누라 이름 붙이고 했지요. 일본 천황 이름도 학명에 들어갔으니까요. 민덕기 소장님이 한 생물에 제 이름을 붙여줬는데, 그건 정말 '농담'이구요, 학명을 붙일 수 없으니 전문가라 하기도 뭣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이 "목록집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앞으로 한국 후새류를 발굴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후새류에게 한국명이 아닌 학명을 붙이겠다"는 고 원장의 다짐이 현실화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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