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산부인과 필수약 '푸로게스트' 생산중지
값싼 약 포기 후 '비급여' 수입품 판매 의도인 듯
환자들은 똑같은 약을 20배 비싸게 구입하게 돼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선정된 약이 갑자기 '생산 중지'된 사건에는 정부 부처간 불협화음 뿐 아니라 수익 내기에 급급한 제약사의 의도도 한 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싼 보험급여 약을 포기하고 수입품을 들여와 비급여로 판매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하루 아침에 똑같은 약을 20배나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산부인과에서 흔히 사용하는 '푸로게스트주'를 판매하는 삼일제약은 지난 3월부터 이 약의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약값이 너무 싸 원가보전이 안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 약은 주로 무월경이나 습관성 유산환자 또는 불임증 환자에 사용하는 약으로 보험약가가 1병에 1767원이다. 회사측은 보험약가 대비 생산원가가 90%에 달해 수익성이 없다며 2005년 8월 심평원에 약가를 3313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신청했다.
두 차례에 걸친 심사 끝에 심평원 약제전문평가위원회는 이 약을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선정하고 원가를 보전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약가는 당시 관련 규정이 정비중임을 들어 다른 약들과 함께 2006년 말에 함께 인상해준다는 방침이었다.
삼일제약 입장에서는 '퇴장방지의약품' 자격으로 약가 인상 신청을 다시 제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회사측은 신청을 포기했고 2007년 1월 발표된 퇴장방지의약품 약가인상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회사측은 즉시 이 약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고 곧바로 생산을 중단했다.식약청과 심평원은 이 약이 퇴장방지의약품이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허가취소 및 급여삭제 등 절차를 일사천리로 밟았다.
약가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삼일제약 관계자는 "당시 결정이 약값을 올려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자사의 중요한 품목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두고 '심평원의 결정을 잘못 해석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회사측의 이후 행동을 보면 다른 이유가 더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삼일제약은 푸로게스트의 생산을 중지하고 이를 대체할 수입약을 수입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수입약의 가격은 기존 약의 20배에 달한다.
푸로게스트를 유지하면서 수입할 수도 있지만 굳이 기존 약을 '죽이는' 이유는 보험약가 때문이다. 기존 약이 있는 상태에서 새 약을 들여오면 기존 약가의 80%만 인정받을 수 있다.
또 회사측은 올해부터 선별등재방식이 적용되자 비급여로 출시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판단했다.기존에는 약의 허가가 이루어지면 자동으로 보험급여 대상이 됐지만, 제도가 바뀌어 비급여 판매가 가능해지자 보험약을 포기하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약값이 싸서 생산을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는 것은 단순한 핑계였던 셈이다.
한편 삼일제약은 이 외에도 생산 시설에 투자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음을 인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cGMP 수준으로 강화된 규정에 맞는 시설 투자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심평원측은 "지금이라도 약가인상 신청을 해오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삼일제약이 주사제 생산라인을 아예 철거해버렸기 때문이다.
회사측의 이익 극대화 결정과 정부의 '퇴장방지의약품' 관리소홀로 인해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약을 20배나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