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무엇이 문제인가?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는 고통 속에 죽음의 과정을 연장해야 하고,
이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은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막대한 의료비
문제로 경제적·사회적·심리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3차 의료기관의 병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환자들로
인해 정작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신속한 입원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병을 키우기도 한다. |
우리의 현실
인간이 자신의 생애를 마칠 때 인간적 품위를 갖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의 경우 가족의 의미는 더 크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되고 맞벌이가 늘면서, 과거와는 달리 가족들의 간호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주거환경의 변화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과거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감염성 질환이나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암·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의 증가로 의료의 패러다임이 완치에서 케어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한 인공영양·인공호흡기 사용·심폐소생술·신투석 등 생명유지기술은 말기상태에 있는 환자들의 질병을 완치하거나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선으로 인식되어 왔다. 반면 최근 죽음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늘어나고 의료에서의 소비자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죽음의 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에게 이러한 생명유지장치는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연장할 뿐이며 가족들에게도 부담만을 가중시킬 뿐이기 때문에 비인간적라는 윤리적인 문제가 지적됐다. 죽음을 단순히 진단과 치료의 실패로 보는 견해는 삶의 완성으로 보기 보다는 사소한 것으로 보는 것이며, 죽음의 자연성으로부터 비의료적인 의미를 빼앗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의료화는 사망장소의 변화에서도 볼 수 있다. 과거나 현재나 동서양을 떠나서 가장 이상적인 임종장소는 가정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 병원에서의 사망이 급격히 증가하여(1989년 12.8%에서 2005년 49.8%)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임종(Dying), 독립적인 진단
임종장소가 집이 아닌 의료기관으로 점차 옮겨짐으로써 임종의 의료화는 불가역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종을 만성적이면서 치료 불가능한 상태의 과정에 들어선 환자에 대한 하나의 독립된 진단으로 보는 견해는 영적 돌봄과 완화의료에 대한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이고 치료문제에 대한 대화를 촉진시키며 진단과 완치를 위한 노력보다는 환자에 대한 배려와 편의에 치중하는 노력을 보다 중요시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진단을 통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우리는 의료인이나 환자, 보호자들에게 지나친 검사와 치료가 죽어가는 환자의 죽음을 역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순간을 잠시 연기시킬 뿐이며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줌으로써 의사결정에 따른 짐을 덜어줄 수가 있다. 또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의 정서적인 부담은 치료의 제한에 대한 기관의 정책 및 의사와 다른 의료인간의 의견조절을 통해 개방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의학적인 치료를 다하다가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할 때 임종이라는 독립된 진단을 명확히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함으로써 사회와 대화해야 한다.
임종 진료에 대한 표준 지침 마련
독립적인 진단으로서의 임종과 품위 있는 죽음의 정의에 근거해서 임종 진료에 대한 지침이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 먼저 현재 질병 상태와 선택 가능한 치료법 등에 대해 환자와 가족, 의료진간에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의료정보의 전달과정이나 의사 결정과정에서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여 합당한 임종 진료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에 관한 지침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지침은 통일된 사전 유언(Advance Directives) 및 심폐소생술 금지 요청서의 마련, 의사결정 대리인 결정 절차, 병원의료윤리위원회 활용 등 연명치료의 중단과 관련된 구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제시가 포함되어야 한다. 인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의 의학적인 치료를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할 때,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연장할 뿐인 치료법을 거부할 수 있는 결정은 인간조건의 수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말기환자에게 필요한 유익한 치료는 오히려 중단되지 않으며 환자의 남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유지와 사랑의 나눔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순히 연명치료의 중단과 관련된 의사결정과정 뿐만 아니라 임종 환자의 고통 감소를 통한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인생을 정리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인간적 배려와 노력에 대한 내용이 지침에 포함되어야 한다. 임상 현장에서 임종 환자의 관리 결정을 의사 개개인의 가치관과 판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의사소통 및 임종환자 관리에 관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
세계보건기구에서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안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시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죽음을 삶의 일부이며 자연적 현상으로 이해하며, 임종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지만 수동적 안락사와 같이 환자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증 및 증상의 적절한 조절과 같은 의료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자기 조절감의 성취, 부담의 경감, 관계 강화, 희망과 기대, 영적 및 존재적 신념 등을 인생의 마지막에서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도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하는 것을 품위 있는 죽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 문화와 정서에 적합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의 모델을 정립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계·학계·종교계·언론 등 사회의 여러 지도자들과 여론 형성층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인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캠페인'을 통해 일반 국민들이 임종 과정과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홍보함으로써 '바람직한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의 사회적 여건을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정부는 품위 있는 죽음의 저해 요인들을 해결하기 위해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 자기의사결정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의 법제화 등에 대해 법적·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미국·대만 등 여러 나라에서는 환자가 자신의 치료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환자에게 알리고 본인의 선택을 보장해 주는 사전의사 결정(Advance Directives)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환자 자기결정법(Patient Self-Determination Act)'이나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 등이 제정되어 있다. 이러한 법은 의사와 환자간의 대화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선호에 따라 치료될 것이라는 환자들의 확신을 더 강화시켜 줄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듯이 모든 임종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국민 누구나 부딪히게 될 문제인 죽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으며 삶을 잘 마무리하고 편안하게 맞이하는 것은 헌법에 근거한 행복추구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인간적이면서도 적절한 임종환자에 대한 돌봄의 의학적·사회적·경제적 저해요인들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임종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사회는 부적절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노력은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의 자연적인 과정에 의한 죽음에 이르렀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불가항력적인 조건으로 수용하며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고 삶을 정리하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