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06:00 (금)
내걸린 얼굴

내걸린 얼굴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8.22 09:19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동현(한국애보트 전무)

어릴 적 읽었던 글 중 '내걸린 얼굴'이라는 한국 단편소설이 있다. 후에 매우 통속적인 소설을 썼다는 이유에서인지, 소위 수능/논술용 한국단편소설선집의 목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작가의 작품이다.


오래 전이라 줄거리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사진이 동네 어귀 사진관 쇼윈도에 내걸린 사건에 대해 느낀 감회를 그린 소설이었던 것 같다.


줄거리보다는 '내걸린 얼굴'이라는 냉소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제목이 머리 속에 오래 남아, 수련의 시절 만약 내가 개원을 하게 되면 절대 내 이름을 사용한 상호는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얼굴을 내걸 일이 가끔이라도 생길 때면 나를 주춤하게 만들곤 했다. 여의사칼럼을 부탁 받으면서도 제일 먼저 떠올린 단어이기도 하였다.


의사들만큼 자기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사는 직업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쓰는 간판들의 대부분은 의원들이다. 물론 최근에는 출신 학교 이름을 사용하거나 특정 의미를 가진 이름의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각종 미디어에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노출시키는 의사들은 점점 많아지는 듯 하다. 지하철역의 광고판마다 자신을 상품화한 의사들의 광고가 넘쳐 난다.


일정한 전문성을 인정 받은 작가나 전문가들만이 책을 쓰고, 매스미디어에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이야기하던 과거와는 달리, 누구나 의도와 계기만 있다면 자기 얼굴과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의사 뿐 아니라 전문직 인사들을 오락프로에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거철마다 너무 많은 얼굴들이 별 주목도 받지 못하면서 벽에 걸려있다가 사라진다. 웹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웹과는 달리 사용자 스스로가 참여하여 서비스를 창출하고 공유한다는 웹 2.0 환경에서는 블로그나 UCC 등을 통해 자기를 노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 나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본능의 일부이기도 하고,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글에서 "인생이란 낯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며 살아야 하는 무도회장과 같고, 전진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아래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전쟁터와 같다"고도 하였지만, 때론 필요와 명분 뒤에 숨어있는 허영심이 쉽게 감추어 지지도 않는다. 반면 어떤 이들은 기회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얼굴을 내거는 일을 극구 사양하기도 한다.


내가 원해서든, 어쩔 수 없어서든 얼굴을 내걸 일이 많아진 세상이다. 자연인으로서 또 전문가로서 어떤 얼굴과 이름으로 내걸리고 싶은가, 우리는 의사의 어떤 얼굴을 보고 싶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