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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의사매도 그만' 해법 자문구해야
`의사매도 그만' 해법 자문구해야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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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은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여당은 신뢰와 정책수행 능력에 의심을 받게 됐으며, 의사들은 직업적 정체성과 존엄성에 큰 상처를 받아야 했고, 국민들은 의료비 상승 부담과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송호근 교수(서울대 사회학)는 “의약분업이야말로 현정권의 가장 중요한 실책”이라며 이해당사자 모두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손해를 본, 그야말로 `패자의 전쟁'으로 혹평했다.

왜 하필 의약분업이었을까? 건강보험 재정의 파탄 위기와 혼란 속에 빠진 지금에 와서 다시 의약분업을 들춰내고자 하는 것은 소모적 논쟁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사태의 배경과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의사와 의사단체로 전가하려는 보건당국의 행태 역시 결코 사태해결의 방법이 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의학발전과 국민 건강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의약분업에 손을 대지 못했다. 의약분업은 의료법, 약사법, 의료분쟁조정법 등 의약관련 법률의 대대적인 정비 외에도 의료구조, 제약산업의 구조, 사회구조는 물론 대폭적인 재정지원과 국민들의 의식구조까지 총제적 변화를 요구하는 제도다. 역대 정권이 의약분업을 수시로 거론했으면서도 시행을 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국민들의 생활 양식마저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역대 정권은 서둘러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버렸다.

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여당이 되는 정권 교체에 성공한 국민의 정부는 환호의 분위기에서 일찍 깨어나야 했다.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떠 안을 수밖에 없었던 IMF 경제 위기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경제 위기 극복에 매달려야 했던 국민의 정부는 국민들이 가장 피부로 절감하는 복지정책에 넉넉히 재정 지원을 할 여유가 없었다.

저수가-저부담-저급여 정책을 통해 돈 많이 들이지 않고도 수 십 년간 정권의 우월성을 담보해온 의료보험 재정도 늘어나는 의료수요와 의료비용의 상승 앞에 역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싸게 시작한 의료보험에 적지 않은 재정 투입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을 통해 역대 정권과의 차별성과 선명성을 부각시켜야 했던 국민의 정부 앞에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은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의료보험 통합을 통해 사회적 형평성을 더욱 강화하고 위험 분산 효과도 배가할 수 있다는 정책 목표가 세워졌고,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약분업이 개혁 과제로 함께 간택됐다.

리베이트 관행과 부조리를 일소하여 의보재정의 정상화와 국민건강 증진은 물론 국민 의료비까지 절감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에 국민의 정부는 단계적 시행이라는 김영삼 정권의 정책을 뒤엎어 버리고 전면 시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민의 정부가 선택한 의약분업 과정은 제약회사 비리근절→의약품 실거래가제도 시행→정부 의료비 지출 감소→잉여 의료비로 급여 확대 및 의사 손실 보상 등 단순하고 명료했다. 국민의 정부는 의약분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인프라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어야 하는지, 예상되는 문제는 무엇이고 대응책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서까지는 시야가 미치지 못했다. 일단 정책과 목표가 정해진 이상 이에 반하는 행동은 기득권을 가진 수구세력의 반발 내지 집단 이기주의로 낙인찍혔다. 오랜 야당시절의 투쟁 전략이 정책 실행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교육개혁이 그랬고, 의료개혁이 그랬으며, 언론개혁 또한 그 전철을 밟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전개한 대중주의와 평등주의에 기초한 의료정책 분야의 개혁은 국가의 의료가격독점화를 강화하는 방향과 궤적을 같이한다. 국민의 정부는 우선 건강보험의 통합과 통합 건강보험공단에 의한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가격의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의약분업과 동시에 의약품 물류시스템과 의약품 유통정보의 독점화도 본격 추진됐다. 민간 위주의 시장 경제체제하에 경쟁하고 있던 의료계는 필연적으로 의료체제의 독점화에 반대하는 유일한 집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45년부터 2000년까지 역대 정권의 `의료정책의 발자취'를 연구한 안윤옥 교수(서울의대 예방의학)는 “조세제도의 개혁 등을 통한 의료보험재정 확충과 같은 근본적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지지기반이 미약한 현 정부의 한계로 인하여 `복지의 의료화정책'과 `저수가정책' 위에 수요자 독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의사들의 사회경제적 희생과 침해된 자율성'을 담보로 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며 밀어부치기식 정책이 강행된 배경을 또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

준비 안된 의약분업에 반기를 든 의사들은 투쟁 경험이 풍부한 국민의 정부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고, 여론과 일부 시민단체의 집중포화 속에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이자 부정과 비리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의사의 직업적 권위와 정체성, 사회의 신뢰는 대부분 무너졌다.

1년 이상 계속된 의사들의 투쟁이 막을 내린 지금에서야 국민의 정부는 의약분업이 최대의 실수였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국민들은 의료비 상승이 없을 거라는 정부여당의 철석같은 약속이 거짓말로 드러나고, 건강보험 재정의 부실을 올바로 알리지 않은채 파산 직전에 이른데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더욱이 준비가 다 된 줄 알았던 의약분업 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에 허탈해 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위기에까지 직면하게된 원인이 의료기관의 불법청구 등 공급자 때문이라고 의사와 의사집단을 싸잡아 매도하는 운동권 형태의 밀어부치기식 대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들에게 어떻게 하면 의료비 상승문제를 해결하고, 의학발전과 국민건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지 자문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재정위기 극복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총진료비는 1997년 8조8,039억원, 1998년 9조9,650억원, 1999년 11조7,056억원, 2000년 13조1,409억원 등으로 지난 10년간 평균 17.7%의 자연증가율을 보여왔다. 이러한 자연증가율을 감안하여 1999년 대비 2000년 총진료비 추정치는 13조7,755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2001년 1월 인상분 문제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수가인상이 재정파탄의 주 원인이라는 분석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직접적인 원인은 분업전 약국에서 임의조제를 받거나 일반의약품을 구입해 자가 치료를 해 왔던 이용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되면서 6,800억원 가량의 새로운 재정 지출 요인이 발생했으며, 의약품 조제료(1조8,000∼1조8,500억원) 및 원외처방료(1조4,900억원)도 적자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밖에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시행하면서 건강보험이 추가로 감당해야 할 급여비가 3,350억원이 새로 늘어났으며, 국민 일인당 의료이용량의 증가, 의료비 지출이 큰 노령인구 증가, 인구의 자연 증가, 급여일수 및 급여범위 확대 등도 부수적인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1997년 말 2조5,000여억원에 달했던 직장의보 적립금이 불과 3년만인 2000년 말 8,825억원으로 급격히 줄어든 것에 대한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은 국민들에게 1996년 이후 보험료 지출이 수입보다 매년 늘어나고 있었음에도 건강보험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다는 사실, 매년 증가되는 진료비의 자연증가분과 적립금 소진에 따른 적자만으로도 의약분업 시행 여부와 관계없이 재정위기가 예상됐다는 사실을 올바로 알려야 한다.

OECD 국가 가운데 GNP 대비 총 의료비 지출 비율이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통계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준비 안된 분업을 강행한데 대한 정중한 사과와 함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고해야 한다.

의사 사회도 3분 진료의 구조적 모순, 의료사고의 위험을 감안한 방어진료의 악순환, 국민의 생명보다는 재정보호를 판단의 잣대로 삼고 있는 보험자단체의 속박 등에서 벗어나 의학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양심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의료대란을 통해 입은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때 한국 의료의 희망이 다시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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