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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 흘린 구슬 땀…

황무지에서 흘린 구슬 땀…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7.10.0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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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일 대한기생충학회 편집위원장

대한기생충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The Korean Journal of Parasitology>는 미국의 'Thomson Scientific사'로부터 2008년부터 발행하는 학술지부터 SCI-E(Science Citation Index-Expanded)에 등재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본지 8월 16일자 15면 참조>. 대한의학학술지 편집인협의회 회원학회가 발행하는 165종 학술지 가운데 6번째 SCI급 학술지 등재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임상의학에 비해 열악한 기초의학의 현실에 굴하지 않고 4전5기 끝에 SCI-E 등재라는 쾌거를 거둔 이면에는 폐간 직전까지 내몰린 위기 상황에 굴하지 않고 전통의 맥을 이어온 역대 편집위원들의 각고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2006년부터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채종일 서울의대 교수와 홍성태 대한기생충학회장(2000∼2005년 편집위원장)을 만나 학회지 창간에서부터 SCI-E 등재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뒷얘기를 들어봤다.

▲ 대한기생충학회 채종일 편집위원장(사진 좌)홍성태 회장(사진 우)
"4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5기로 일어섰습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기생충학회지의 전통을 세우고 이어온 역대 편집위원장들과 열심히 논문을 써 낸 회원들이 아니었으면 결코 SCI-E 등재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채종일 편집위원장은 "KJP가 등재됐다는 소식에 얼마나 흐뭇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모른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기생충학회지의 역사는 소진탁 원로교수가 초대 학술부장을 맡아 학술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생충학회지는 1976년 정식으로 편집위원회(위원장 조승열·성균관의대 교수)를 구성하면서 학술지로서의 틀과 내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학회 임원이 바뀔 때마다 학술지 편집장이 바뀌고 형식과 내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나왔습니다.임원 임기와는 별도로 편집위원장 체제를 도입한 것이 1976년부터입니다. 조승열·이순형 교수님이 6번 편집위원장을 연임했고, 홍성태 교수가 3번 연임하면서 학술지의 전통을 쌓아갔습니다."

채 위원장은 "1993년 이순형 편집위원장 재직 시절에 한글 표지인 <기생충학잡지>를 <The Korean Journal of Parasitology>로 바꾸면서 현재까지 판형을 유지하고 있다"며 "당시에 메드라인에 등재한 것을 계기로 본문을 전면 영문으로 게재하면서 국제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편집위원회 독립'주효'
1992년에 인덱스 메디쿠스와 퍼브메드 등재되고, 외국 교과서에 KJP에 실릴 논문이 인용되면서 본 궤도에 올랐던 KJP는 IMF 경제 위기와 국내 논문이 외국 SCI등재 학술지로 몰리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존폐 위기까지 내몰렸다.

2000∼2005년 편집위원장을 역임한 홍성태 대한기생충학회장(서울의대 교수)은 "편집위원장을 맡을 당시에 교수 승진이나 채용 과정은 물론 연구비를 지급할 때 SCI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게재했냐를 기준으로 정하면서 논문이 확 줄어들었다"면서 "한 호에 논문이 4∼5편에 불과할 정도로 줄어들다보니 겉 표지 옆면에 학술지 명칭을 인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얇아져 과연 발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당시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일본기생충학회는 유럽에서 가장 큰 Elsevier 출판사에 출판비까지 부담하면서 <Parasitology International>이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었습니다. 막대한 출판 비용이 부담되니까 한국과 학회지를 통합해 반반씩 비용을 부담하는게 좋지않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죠."

편집위원회들은 통합하면 Korean이란 국호를 버려야 하고, 일본 심사위원들에게 논문 심사를 받아야 하는 굴욕을 겪을 순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홍 회장은 "일본기생충학회는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학회지를 발행한다는 후광으로 한국보다 먼저 SCI와 퍼브메드 등재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Japan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했고, 막대한 돈을 써 가면서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면서 "비록 일본보다는 뒤늦게 SCI-E에 등재되긴 했지만 위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Korean이라는 국명을 지켜낸 것은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자부심"이라고 했다.

SCI-E 등재 과정 험난
홍성태 회장은 2000년부터 학회지 편집위원에 미국·체코·일본 등 외국의 저명 학자 6인을 편집위원으로 참여시켜 국제화의 지평을 넓혔다. 2006년부터 편집위원장을 맡은 채종일 서울의대 교수는 외국인 저명 학자에게 피어리뷰를 요청하고, 학회지 문호를 개방해 외국인들의 논문을 게재하면서 국제적인 학술지로 발돋움 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한 번 등재신청을 한 뒤 탈락하면 2년 뒤에야 다시 신청을 할 수 있는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가며 4전 5기 끝에 마침내 2008년 등재 결정이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채 위원장과 홍 회장은 "미국 톰슨사를 방문해 실무자들에게 한국 의학 학술지를 끈질기게 홍보하고, KJP를 바로 알리기 위해 무던히 애쓴 허선 한림의대 교수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며 "톰슨사의 실무책임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잊어먹을만 하면 이-메일을 보내 KJP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서도 논문 게재요청 쇄도
"2005년 후반기부터 연 60편 이상의 논문이 게재되기 시작하면서 학회지 발간을 걱정해야 하는 고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태국·이란·터키는 물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케냐와 남미에서도 논문을 실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채 위원장은 "외국 논문의 절반 이상은 탈락시킬 정도로 KJP의 질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현직 편집위원장이자 선후배 교수로 찰떡 콤비를 자랑하고 있는 채 위원장과 홍 회장은 앞으로 KJP의 위상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논문 작성법·논문 심의법·출판윤리 등에 관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현재 임팩트 펙터는 0.4 수준이지만 1.0 이상으로 올릴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외국 잡지에 내던 논문이 KJP로 유턴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말이죠."

젊은 의사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기초의학. 그 중에서도 기피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기생충학의 어려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싶다"는 채 위원장과 홍 회장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수질환은 꼭 필요한 학문"이라며 "진단·예방·관리 전문가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인 인식과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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