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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인은 잠재적 범죄자인가?

시론 의료인은 잠재적 범죄자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10.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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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훈(서울의대 교수·이비인후과)

며칠 전 국회에서는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 약인가? 독인가?'라는 매우 선정적인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있었다. 그 답은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인데, 이 법안은 바로 '약이 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독'인 것이다. 어떠한 최선의 치료나 약도 어느 정도의 위험이나 부작용이 있는 것이고, 절대적으로 완벽한 약, 완벽한 치료는 없다는 사실에는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된 '무과실 입증책임의 전환'은 의료인을 마치 인체의 모든 원리를 이해 하고 있는 절대자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는 커녕, 아직도 인체와 질병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치료 과정에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

의료 행위가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이라고 해서, 설계도가 있고, 원리도 알고, 재료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기계 수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무과실의 입증은 누구에게도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토론회석상에서 시민단체 대표가 문제 사례로 제시한 경우들도 결국 100% 나을 수 있는 질환들이 아니고 하나같이 위중한 상황들로서, 희망하건대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으나 완벽한 치료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이를 의료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다.

무과실의 입증책임이 의료진에게 지워질 때 의료 현장에서 일어날 방어진료·진료 위축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진료 행태의 왜곡은 불을 보듯 확연하고, 이와 수반되는 의료 비용의 증가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

예를 들면 지금의 건강보험 기준에서는 암 환자의 치료 후에 PET를 1년에 두 번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암이 수술 후 재발한 경우에 1개월 마다 PET를 해서 미리 발견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 의료진은 무과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PET를 더 자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면 그 비용은 누가 내야 할 것인가? 건강보험에서 지불해 줄 것인가? 환자가 부담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입법이 필요한 이유로  '의료 정보의 비대칭'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의료 행위의 불성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지 이처럼 '입증책임의 전환'을 입법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와 시스템이 책임져야 할 일을 '내가 잘 모르겠으니 당신이 증명하시오'라고 하면서 모든 불만족스러운 결과의 책임을 의료진과 병원에게 전가하는 매우 무책임한 일이고 비겁한 횡포라고 생각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할 때 환자의 상태 및 결과 등을 상세히 기록토록 의무화 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 환자와 가족이 환자 기록의 열람·사본교부 등을 요구할 때 의료인은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즉 환자의 알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권리가 현실적으로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래서 의료분쟁 소송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면 관련 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이 법안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질병이라고 하는 '공적'에 대해서 환자와 의사는 가장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어야 최대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음에도 우리의 현실에는 '불신의 높은 벽'이 있다는 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데, 도리어 이 법안은 불신을 더욱 깊게 하고 가장 긴밀해야 할 동반자 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추락시킬 것이다.

의료행위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이에 대해 필요치 않은 분쟁이 발생할 것이고, 이 때 '무과실'의 책임을 의료진이 져야 한다면, 쉽게 소송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문제 제기만 하게 되면 모든 증명을 의사가 해야 되는데,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토론회에서 현직 법대 교수인 한 토론자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환자는 소송을 제기하기만 하면 된다. 소송을 제기하기만 하면 교통사고의 경우에서처럼 사실상 자동적으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입증책임이 의사에게 전가돼 있으므로 소송에서 질 확률은 단언코 거의 없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최종적으로 의료진이 '무과실'을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며, 여기에 입법 제안자들의 이기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확충시키기 위해서는 정당한 의료활동을 보호·보장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다. 그 동안 의사들은 사명감 하나로 최선의 치료, 최고의 치료방법을 적용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이와 같은 법안은 그나마 수 십년 간 공들여 쌓아온 우리의 의료 수준을 밑바닥부터 무너뜨릴 것이고, 결국 그 손해는 모든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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