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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만성정신질환자 의료 후진성 극복해야
시론 만성정신질환자 의료 후진성 극복해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10.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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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승(고담의료재단 마더스병원장)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 정신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 관리하지 못한다면 국민대중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선진사회로 갈 수 있는 사회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적으로 5만 명 이상에 달하는 입원 중인 만성정신질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신과 의료급여환자들은 효과가 있고 부작용이 적은 선진적인 약물치료, 사회적응과 회복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정신치료 및 각종 정신사회적 치료를 비롯한 정신재활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태에서 회복과 사회복귀의 전망과 희망을 상실한 채 정신과 병의원의 낙후된 시설과 환경 속에 수 년 이상씩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한 가운데 정신질환자의 인권문제가 빈번하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만성정신질환자 정신의료의 후진성은 두 가지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정신질환자 인권문제와 의료의 후진성이다.

그런데 인권의 후진성과 의료의 후진성은 어느 한 쪽만을 따로 떼어서 해결할 수 없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만성정신질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조건이 정신질환자 인권문제의 매우 중요한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심층적인 요인은 무시되고 표면적인 인권문제 만이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신의료의 시스템은 병원 및 의사, 환자 및 가족, 그리고 국가의 세 가지 주체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건강보험 시스템과 의료급여 시스템을 비교해보면 건강보험의 경우 환자와 보호자는 많은 경우 병원과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와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소비자 스스로가 직접 서비스 비용을 부담하는 점과 아직도 가족들이 환자의 회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과 의사는 그러한 피드백에 의해 자신이 제공하는 의료와 서비스의 질과 양을 개선하고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의료급여환자 정신의료 시스템의 경우 환자와 가족이 비용(의 일부 혹은 전부)지급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데다가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이해와 표현력이 부족하고 가족 역시 질병에 대한 이해부족과 오랜 세월 지치고 회복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병원과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와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인 피드백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의료급여환자 정신의료 시스템을 결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정신과 의료급여 제도이다. 정신과 의료급여제도는 일당 정액제라고 하는 특이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질병의 종류에 무관하게, 그리고 질병의 심각도와 경과와도 무관하게, 또한 제공되는 의료와 서비스의 질과 양에 무관하게 모든 정신과 의료급여환자에 대해 동일한 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이것을 일종의 포괄수가제도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특정 질병에 대한 포괄수가제도는 가능하지만 특정과의 모든 질병에 대해 동일한 수가를 지급하는 제도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첫째, 정액제 수가 제도는 양질의 서비스와 저질의 서비스에 대해 동일한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최소한에도 못 미치는 의료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여 정신질환자 인권문제를 야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 된다.

둘째, 이는 또한 개별 병의원들이 상호간의 경쟁을 통하여 의료와 서비스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동기를 박탈하기 때문에 정신의료의 발전을 봉쇄한다. 양질의 의료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과 인권문제를 야기할 정도의 열악한 병원에 대해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질 높은 의료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병원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논한바와 같이 의료급여를 받는 정신과 환자 자신과 가족들이 제공되는 의료와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셋째, 정액제 수가는 한편에서는 치료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환자의 회복이 저하됨에 의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낮은 수가를 보전하려는 일부의 병원당국에 의해 장기입원의 중요한 요인이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액제 수가의 장점으로 꼽히는 비용 효과를 역전시키고 오히려 비용 낭비를 초래한다.

넷째, 의료와 서비스의 무차별적이고 획일적인 하향화로 인한 박탈감 외에도 정신과 의료급여 환자들은 정신과 건강보험 환자에 비해, 그리고 다른 과의 의료급여 환자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 입원 중인 정신과 의료급여 환자는 입원 중인 정신과 건강보험 환자의 40~50%에 불과한 비용으로 치료받고 있다. 이는 입원 중인 다른 과의 의료급여 환자들이 건강보험 환자의 90%에 달하는 비용으로 치료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여도 불평등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정신과 의료급여제도는 그 자체가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반 인권적인 제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사고 있는 것이다.

만성정신질환자 정신의료의 후진성은 정액제 의료급여 제도가 규정하고 있는 시스템 차원과 병원 및 정신과 의사, 환자 및 가족, 그리고 국가로 대표되는 개별주체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후진성의 요인을 개별주체의 역기능에서만 찾는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찾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제한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스템을 규정하고 있는 정신과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향후 우리 사회에서 선진적인 정신보건과 정신질환자의 인권문제에 대해 이러한 방향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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