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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실에서 본 정상회담

당직실에서 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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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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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부산의료원 가정의학과 R2)

일과를 끝내고 퀴퀴한 당직실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TV를 본다. 3개 방송사 전부 북한에서 넘어오는 속보를 전하고 있으니 채널을 선택할 수가 없다. 휴전선을 걸어 가셨나보다. 노란선 위에 찍히는 발자국이 선명했다.

3일 내내 TV는 평양에서의 에피소드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군중의 함성소리, 만찬에서 메뉴 그리고 개성공단과 같은 경공업지원, 남포에 조선업을 위시한 중공업지원, 백두산 관광, 서해 NLL협의 등이 뉴스에 나온다. 근데 의료분야는 정상회담 주제가 아닌가보다. 별 말이 없다. 문득 그 동네 병원은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 낙후된 시설과 현지의 의약품 부족 현상 등이 연상됐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병원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병원 외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에 능동적이지 못한 내가 이제 일상이 돼 버렸다.

2007년 1월 한달간 개성공단 그린닥터스 진료소에 파견 근무를 했다. 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들 말을 들어보면 일상생활에서 수돗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지 잘씻지 못한다고 했고, 복통으로 진료실을 방문하면 무조건 기생충 약을 달라고 할 정도로 위생상태가 나빴다. 심지어 북한 의료진조차 한 번 사용한 주사기를 버리지 않고 알콜에 잠시 담궜다가 다시 사용하고 있었다. 그 외 그 사람들과 한 달간 부대끼며 느낀 건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연민이었다. 근데 파견 끝나고 돌아와 다시 병원 일에 시달리니 잊고 살았나 보다. 정상회담을 보고 있자니 개성공단에 만난 북한 주민들이 떠오른다.

최근 월드비전이란 곳에서 수해 이후 북한을 방문해보니 의료시설이 30%이상 피해를 입어 평양 이외 지역으로 의약품을 지급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구호단체들은 나름의 답을 내놓고 있다. 단순히 북한에 완제품 의약품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스스로 필요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약공장 신증축과 원료 의약품 지원, 의료진 교육이 필요하다고. 실제 굿네이버스 같은 단체는 대동강제약회사를 설립해 소량이나마 항생제를 생산하고 있다.

북한 의료에 대한 이런 해답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 의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관심'일거 같다. 나와 상관없는 폐쇄된 나라라는 인식에 변화를 줘 치료해야할 환자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참여가 될 것이다. 

의사들 중 왜 우리가 평소 주적이라고 배워 온 북한을 도와야 하는가에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다. 더 많은 분들은 아예 관심이 없다. 하루 한끼도 먹지 못하며 영양실조와 질병에 시달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사정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것에 더해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뭘 주고, 뭘 받아내고 하는 정치적 잣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도 분명 가족을 이뤄 나름의 힘든 생활을 헤쳐 나가려하는 많은 삶들이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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