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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엄마 따라잡기?

강남 엄마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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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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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순천향대 부천병원 산부인과 전임강사)

며칠 전 첫 애의 유치원 운동회가 있었다. 운동을 많이 하지 않는 나로서는 체중이나 몸집은 절대 뒤지지 않지만, 감각만은 예민해서 운동회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건 힘들겠는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응원전부터 시작해서 엄마들 단거리 경주·이어달리기·단체 줄넘기 등 힘든 시간이었다.

간만에 쉬어야 한다고 말하는 몸의 말과는 정반대로 계속 몸을 움직이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 힘들었다. 모처럼 유치원 다니는 첫애를 위해 뭔가 해줘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과 의무감 또한 육체적인 피로를 2배 더하는 작용을 했다.

처음에 쌀 한가마니 무게의 아이를 엎고 뛰는 것은 오기와 깡으로 밀어붙였건만, 역시 점점 하면 할수록 조만간 바닥이 드러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우리 큰애는 뭐든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엄마들 경기가 있으면 계속 나를 나가라고 밀어붙였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지막 100m 달리기에서 처참하게 넘어졌는데, 학창시절 체력장 이후로 그런 비참한 상황으로 넘어지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피 흘리는 모습보다 1등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실망하며 삐죽거렸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에 나타난 나를 보며 동료 선생님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를 놀려댔다. 부천 엄마도 못 따라잡아 이렇게 비참한 몰골인데, 어떻게 강남 엄마나 목동 엄마를 따라잡겠냐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속편하다고 말이다. 평소에 극성 엄마티를 내는 나를 보고 항상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던 것에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

그후 멍하니 며칠간 상처의 통증과 비참한 심정 뒤로, '자녀의 성적은 곧 엄마의 능력'이라는 유행어처럼 과연 내가 우리 애들을 잘 키워갈 수 있을 지 한참 고민이 되었다. 자녀교육을 위해서 로드 매니저를 해야만 자녀가 선행학습·학과 공부·과제물·교우관계를 모두 이룰 수 있고,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역시나 엄마밖에 없다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직장 다니는 엄마로서 넘어지고 넘어져서 지금처럼 비참한 몰골로 일어날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내 아기들을 멋지게 키워 한번 부천에서 강남 엄마를 따라 잡아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농담처럼 친구들이 이야기한다. 애들 준비물이 제대로 안 됐을 때 찾아오지 않는 엄마는 거의 110% 의사라고. 하지만 이럴 때 드는 안타까운 마음은 자녀에게 사랑을 많이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엄마가 자녀만을 위한 로드매니저가 되어 선행학습 잘 하는 학원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이 훌륭한 자녀교육이 돼버린 현재의 교육현실 때문이다.

우리 현호와 지후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엄마로 거듭나기 위해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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