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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 화폐 모델을 최초의 여의사 박 에스더로
시론 새 화폐 모델을 최초의 여의사 박 에스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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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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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숙희(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한국여자의사회 공보이사)

요즈음 고액권 새 화폐 모델로 여성계는 여성을, 이공계는 과학자를 넣자며, 김구·정약용·장영실·유관순·신사임당 등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여성계에서는 신사임당이 이미 화폐의 모델인 율곡의 어머니이고 유교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여성 대표 상징 인물로 부적절하다고 반대 성명을 내고 있다. 특히 여성단체인 이프는 허난설헌이나 신라의 선덕여왕을 새로운 여성상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도 2004년 사상 최초로 여성 및 과학자의 초상을 화폐의 도안소재로 채택하였는데, 1000엔 지폐의 인물은 의학자인 '노구치 히데요'이고, 5000엔 지폐는 여류 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이다.  

노구치 히데오(1876-1928)는 가난한 농가 출생의 의학자로 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록펠러 의학연구소에서 최초로 매독균의 순수 배양에 성공하였다. 51세에 아프리카 가나의 아크라에서 황열병을 연구하다 이 병에 걸려 사망하였으며, 어릴 때의 화상으로 한손이 불구인 상태로 세계적인 세균학자가 된 인물이다.

히구치 이치요(1872~1896)는 메이지시대의 천재 여류 소설가로, '십삼야(十三夜)' 등의 소설과 문학성이 높은 일기를 남겼으며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필자는 지난해 한국여자의사회 50년사를 편집하면서 여명기 여의사들의 활동을 조명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인 박 에스더를 여성이면서 아울러 과학자로서 고액권 화폐에 적합한 인물로 추천하고 싶다.

박 에스더(Mrs Esther Kim Park, 본명 김점동)는 1876년 서울 정동 부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10년쯤 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정동교회와 학교가 세워졌으며, 그 후 아펜젤러의 소개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이화학당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화학당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게 된다.

1893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그녀는 영특하여 재능이 뛰어났고 특히 영어를 아주 잘해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선교 여의사인 로제타 셔우드의 영어 통역을 하며 약을 짓고 환자들을 간호하였다. 처음에 에스더는 피를 보아야 하는 의사의 일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Hall 박사와 결혼한 로제타 셔우드(로제타 홀)의 언청이 수술을 보고 의사가 될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Hall 박사의 소개로 기독교 신자인 박유산과 17세에 결혼하였으며, Hall 박사의 권유로 남편의 성을 따라 박 에스더가 되었다.

1894년 닥터 홀이 청일전쟁 후 각종 전염병이 만연한 평양에 남아 진료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그의 생을 마치자, 홀의 가족은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때 에스더 가족도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

1895년 2월 에스더는 리버티 공립학교에 입학하였고, 그녀의 남편은 농장 일을 하면서 에스더의 학업을 뒷바라지 하였다. 그해 9월에 에스더는 뉴욕시의 유아병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1년 이상 근무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한편 개인 교수를 찾아 라틴어와 물리학, 수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1896년에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Wome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에 입학하여 4년 후인 24세에 우등으로 졸업하여 최초의 한국인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식당에서 일하면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해오던 남편 박유산은 그녀의 졸업을 3주 앞두고 병으로 사망하였다.

의사가 된 에스더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안고 귀국하여 여전의(女典醫)도 지내고 보구여관에서 로제타 홀을 다시 만나 함께 진료를 계속하였고, 평안도와 황해도까지 순회 진료를 다녔으며 가마가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곳에서는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진료를 하였다.

1906년에 로제타 셔우드와 함께 평양에 광혜여원 건물을 신축하며, 한국 최초의 간호원 양성소를 개설하였다.

평양의 광혜여원(光惠女院)에서 진료를 하는 한편, Hall이 창설한 맹아학교를 돕다가 과로로 1906년 폐질환에 걸려 1910년 4월 13일 34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박 에스더의 생애를 보면 그녀야말로 여성 선각자이며 진정한 의사가 아닐 수 없다. 1900년에 박 에스더가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 풍습으로 보아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학문과 신앙을 받아들인 용기 있는 여성이었고, 어려운 형편 가운데 남편의 외조를 받아 미국에서의 힘든 의과대학 과정을 우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지혜롭고 적극적인 여성이었으며, 남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귀국하여 가난하고 비참한 조국의 의료봉사를 위해 연약한 몸을 마지막까지 불태우고 감으로서 여의사는 물론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화폐 인물은 조선 시대 인물들로서 세종대왕·이순신·이이(이율곡)·이황 등이며, 1960년 하야 전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다. 이제는 너무 먼 역사 속의 인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가장 큰 변혁기에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공헌한 선각자를 화폐 인물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2008년에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며 한국여자의사회는 지난해에 50주년 행사를 치른 바 있다. 여성계의 요구와 과학계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면 최초의 여의사인 박 에스더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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