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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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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1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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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경(서울 강서·서울가정의원)

혈압으로 오시던 할머니가 약 처방을 받고도 무언가 불안해하며 망설이시더니 큰 맘 먹고 말을 꺼내신다. "뭐가…좀 났시유…." "할머님, 어디에 뭐가 나셨는데요?" 금세 얼굴을 붉히시며 "글씨, 그거이…거기…거시기…워쩐댜…."

어렵게 꺼낸 말씀은 항문 근처에 작은 종기 같은 것이 생겼다는 것이었고, 한 번 보겠다고 하자 얼토당토 않다는 듯 보여주기를 꺼려하셨던 할머니. 아니, 음식 들어가는 구멍 나오는 구멍 같은데, 입 벌리라고 하면 잘 벌리시면서 어찌 나오는 길 근처는 잠시 보여주기도 그리 주저하는지.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감추고 숨기려 하는 것 중 하나가 항문 쪽 이야기이며 또한 똥 싸는 이야기가 아닐까. 먹고 자고 싸는 것만큼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게 무엇이람.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일이며, 이 일이 순조롭지 않으면 당연지사 건강까지 위태로워 지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누구든 집밖을 나와 어디 편하게 들어갈 화장실이 없어 아픈 배를 움켜잡고 이를 악물곤 식은땀 흘리며 화장실을 찾아 헤맨 경험이 있으리라.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변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때문에 변비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게다가 여행만 가면 어찌 더 일 볼 곳이 없는지.

15년 전 미국 여행길 어느 축제 거리에서 어김없이 찾아온 복통에 화장실을 찾아 헤매던 중, 길에서 화살표로 'here'라는 표지를 발견했다. 노천카페 지하에 있는 그 업소의 화장실을 행인들의 이용을 돕기 위해 친절히 표시까지 해놓은 것이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 때 생각했던 것이 선진국이라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었다(물론 유럽을 방문하고 그 생각은 바뀌었다). 아무튼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찾은 화장실이라 해도 들어가서 일을 볼라치면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없는 휴지. 어찌그리 무엇 하나 편하게 일을 볼 수 있게 되어있지 않았던지. 가끔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면 다른 건 몰라도, 집 밖을 나서면 어디서든 좀 편하게 쌀 수 있는 시설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수원에 '해우재'라는 변기모양의 첨단 화장실 집을 지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2008년이 UN 지정 '세계 위생의 해'라던가. 이제 우리나라도 웬만큼 문화수준이 높아져 화장실이 단순히 배설만 하는 곳이 아니라 수준 높은 문화공간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니 개인적으로도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인간에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면 그 중 으뜸이 자유롭게 먹고 싸는 일이 아닐까. 속이 아파 먹는 것이 불편하고, 대장 항문이 좋지 않아 싸는 것이 불편하다면 그건 분명 의사들이 해결해줘야겠지만, 나처럼 위도 튼튼하고 장도 튼튼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먹고 싸는 것에 근심이 없도록 공공시설을 갖추는 것은 나라의 의무가 아닐까. 배 아픈 환자 진료하는데 여념이 없는 의사를 옥죄는 일만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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