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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과 국민정서

연말정산과 국민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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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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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직장인 연말정산 시즌이 돌아왔다. 필자와 같은 직장인들에게 연말정산은 번거롭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두둑한 '용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직장인들은 연말정산을 '제3의 월급'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와 병원에게는 연말정산이 고역이다. 모든 환자의 자료를 정리해서 제출하는 데 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좀 큰 병원의 경우 영수증을 정리하느라 업무를 못 볼 지경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의사들만 타깃으로 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한 의사는 필자에게 "다른 고소득 전문직은 내버려두고 의사들만 잡으려 드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항변이다.

그렇지만 직장인들은 이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일일이 병원이나 의원을 찾아다니지 않고 한꺼번에 진료비 영수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와 병원들이 소득을 감추기 위해 연말정산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이맘때 대한의사협회는 연말정산 자료 제출을 둘러싸고 보건복지부와 팽팽하게 대립했었다. 그 때 의협은 "진료 사실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도 자료를 제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신과나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 질환의 특성상 행여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는 진료 과목 의사들의 반발이 컸다. 필자에게도 이 제도에 항의하는 의사들의 메일이 여러 개 들어왔었다. 만약 의사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터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의사들이 연말정산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한 병·의원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감사 등 강경조치를 취할 것이란 보도가 나가면서 아무래도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올해는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궁금해진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정말 진료기록이 외부로 유출되는지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의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ABC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가 국세청이나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기록을 출력할 때는 '2007년 12월 1일, ABC 정신과, 25000원'이라고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해 직접 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료를 출력했을 때는 '2007년 12월 1일, A×× ××× 25000원'으로 기록돼 있었다. 쉽게 말해 의원의 이름이 모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필자만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직장인이 시스템에 접속했을 때 의원과 진료 과목이 노출됐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아직도 의사들의 주장은 유효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이용한 사람들이 모두 필자의 경험과 같았다면 의사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의협이 올해 연말정산 자료제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번에는 반드시 이 점을 확인하고 '투쟁수위'를 결정했으면 한다.

필자가 이 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팩트(fact)를 바탕으로 주장을 펼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팩트가 틀리면 주장은 신뢰를 잃게 된다. 이와 반대로 팩트에 입각한 주장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또 하나의 팩트가 있다. 바로 국민의 정서다. 대다수의 국민은 의사라는 직업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에 대해서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팩트를 인정하면 의사가 국민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최근 의협이 비윤리적 행위를 한 회원에 대해서 자율징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필자는 의협의 이 '선언'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의사들 사이에서는 "일부 의사의 비윤리적 행위 때문에 의협이 이런 선언까지 해야 하느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쌓여 신뢰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런 조치들이 계속 나오면 의사들은 이미 절반 이상 국민 정서를 따라잡은 것이다. 건투를 빈다.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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