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리를 다녀와서
온정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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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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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호(부산의료원 가정의학과 R3)

속초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내달리다 화진포 근처 해안가 철책 넘어 거세게 쳐대는 동해의 큰 파도를 보았다. 북한 해금강에도 흰 포말이 쏟아지는 그 파도가 남쪽에서와 같은 모습으로 굽이 치고 있었다. 수십 년 남과 북을 나누고 있던 군사분계선은 무척 초라했다. 2m도 되지 않는 낡은 시멘트 말뚝이 표지석처럼 길가에 있었다. 그런 말뚝들이 200m간격으로 분계선을 따라 박혀 있다고 했다. 해안가 말뚝의 남쪽과 북쪽을 보니 갈라지지 않은 하나의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지난 13~15일 금강산 온정리 인민병원 개원식에 다녀왔다. 국제보건의료재단이 수년째 진료의사 파견, 의료기기 현대화, 병원 건물 리모델링을 해왔고 북한의 명승지개발총국과 협의해 14일 재개원식을 하게 된 것이다. 병원은 금강산 관광지역 밖이라 북의료진이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리'단위 병원이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재단의 요청을 받아 전공의를 파견 해오던 터라 재개원식에 초청받았다.

가는 길은 무척 멀었다. 오전 8시 서울을 출발했지만 금강산에 오후 4시가 넘어 도착했고 곧바로 대북지원의 현황에 관해 세미나가 있었다. 예방의학 교수님, 대북시민단체, 통일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이 현재 진행되는 대북지원과 문제점, 향후 방향 등을 논의했다. 듣고 있던 나는 "이제껏 내가 많이 무관심 했었구나" 라고 느꼈다. "파묻혀 있던 병원 일에서 몇일 탈출한다는 들뜬 기분이 더 앞서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날 오후 개원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간단한 인사말과 호(戶)담당의사의 발이 될 자전거 전달식, 병원 내부 공개가 이어졌다. X-ray촬영장비, 수술장비와 인공호흡기, 초음파 기계, 안과 진찰대 등이 갖춰져 남쪽의 여느 보건소 못지 않았다. 말을 붙여본 북측 의료진들은 모두들 무척 고마워했고, 지속적 지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보이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들의 말로는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허름한 흙건물에 주사기, 소독품 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제 다소나마 의료기기가 갖춰졌으니 많은 주민들에게 보건의료 혜택이 주어지길 빌어 본다.

식을 끝내고 호텔로 올 때  북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로 되돌아왔다. 북측 군인들의 감시 겸 안내 틈 사이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궁금해하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창 사이로 눈인사를 건넸다. 검문소 근처를 지날 때 열 살 남짓 세명의 여자아이들과 마주쳤다. 하나같이 남루한 체육복 차림에 비닐 비료포를 매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뭔가 가슴 속이 뭉클했다.

왜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대북문제를 대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그런 곳이다. 호텔 앞 산책길에 부는 미풍을 느끼며 "아 이곳도 바람이 불었지"라고 느끼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우리의 또 다른 반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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